[취재수첩] "영혼 없는 공무원" 자처하는 식약처
“토마토케첩 제조 과정에서 살아있는 구더기가 안으로 들어가기는 힘들어요. 보관·유통 과정에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죠. 식당 등 접객업소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관할이라 조사를 안 했습니다.”(식약처 실무책임자)

지난 주말 인터넷은 ‘구더기 케첩 사건’으로 들끓었다. 경기도의 한 키즈카페가 제공한 일회용 케첩에서 구더기가 수십 마리 나온 사건이다. 식약처는 약 열흘 전 보고를 받았지만 관할이 아니라며 이를 처리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기분 나빠 할 수 있어도 (구더기는) 배 속에 들어가면 거의 사멸한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도 했다. 식약처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살아있는 곤충은 이물질 보고 대상이 아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식품 속 이물질 처리 방법을 정한 식약처 고시를 보면 “발견 당시 살아있는 곤충은 보고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식약처가 보고를 묵혀도 된다는 건 아니다. 한 행정법 전문가의 말이다. “자기 관할이 아니면 사건을 다른 부처로 넘기거나 최소한 민원인에게 해당 관할기관에 신고하라고 안내는 해야 하는 것 같다. 아무 조치도 안 한 건 도덕적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식약처의 이런 행태는 처음이 아니다. 올해 초 식약처는 소아 당뇨병이 있는 자녀를 둔 김미영 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김씨가 혈당측정기기를 ‘해외 직구’로 사서 쓴 뒤 소아당뇨 인터넷 커뮤니티에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고 이를 ‘불법 의료기기 광고’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취지와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규정을 형식적으로 적용하는 모습을 보니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미국 행정학자 랠프 험멜은 “공무원은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더 문제는 그게 왜 잘못됐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기자가 김씨 사건을 문의하자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케첩 사건 담당자도 “규정상 잘못된 게 없다”고 했다.

공무원에게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국민 생활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더 상식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