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사망 원인에 대한 사우디 정부의 수사 결과가 오히려 ‘진실 은폐’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 언론은 물론이고 영국 독일까지 나서 사우디 당국의 발표 내용에 실망을 나타내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우디 검찰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사망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망 원인에 대해선 사우디 요원들에 의한 암살이 아니라 이들과의 우발적인 주먹다짐 중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연루된 18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카슈끄지의 시신은 어디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발적 주먹다짐 중 사망이라면 왜 시신을 공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카슈끄지를 만나기 위해 18명이나 되는 사우디 요원이 터키로 날아간 점도 수상한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미 동부시간) 사우디 검찰의 수사 결과를 접한 뒤 “사우디 정부의 발표를 신뢰한다”고 사우디를 두둔했다.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20일엔 “(카슈끄지 사망 원인에 대한) 답을 찾아낼 때까진 만족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그건(사우디 정부의 발표는) 훌륭한 첫걸음”이라고 기존 태도를 되풀이했다.

카슈끄지가 칼럼을 게재해왔던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 정권의 ‘꼬리 자르기’를 도우려는 부끄러운 의도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이어 “CIA 관리들이 카슈끄지 살해 상황이 담긴 오디오 기록을 청취했다”며 유엔과 미 의회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번 사건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했고 스페인 정부는 “사우디 정부가 발표한 정보가 심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영국 프랑스 유럽연합(EU)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철저한 조사를 강조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