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특별위원회 남발이 도를 넘고 있다. 국회가 여야 합의로 정치개혁특위 등 6개 특위를 만들었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도 이달 들어 2~3개의 당내 특위를 구성하는 등 비상설 회의체 수가 10개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타협이 어려운 문제를 떠넘기는 데 특위가 악용되면서 ‘생산성 제로’의 회의체만 넘쳐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상임위와 특위에서 ‘중복’ 논의

여야는 지난 16일 정치개혁특위, 남북경제협력특위, 에너지특위, 사법개혁특위, 4차산업혁명특위, 윤리특위 등 6개 비상설 특별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이들 위원회에는 의원들이 18명씩 참여한다. 남북한 경협, 에너지, 4차산업 등의 문제를 다루는 국회 특위는 이번이 처음이다. 윤리특위는 의원 윤리규범 준수를 감시하는 상설 위원회였지만 올해부터 비상설로 돌렸다.

이 중 정개특위는 선거제도 개편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사개특위는 검찰·법원 등 사법 개혁을 목적으로 하는 특위여서 두 곳 모두 여야 간 주장이 강하게 맞서는 이슈를 다룬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개특위는 비상설 특별 위원회라지만 거의 매년 꾸려지고 있다”며 “군소 정당들을 중심으로 1위 당선자만 선출직에 오를 수 있는 소선거구제를 2~3위 득표자도 당선될 수 있도록 중·대 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요구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특위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관련 의제를 다루려면 결국 해당 상임위에서 법안이 처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개특위의 논의 과제 대부분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뤄야 한다. 남북 경협은 남북 간 정상이 합의한 데 따른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과 ‘경협 관련 정부 예산안의 국회 처리’가 핵심 의제인 만큼 외교통일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에너지특위 역시 한국전력을 비롯한 주요 발전공기업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영역이 겹친다. 국회 관계자는 “비상설이라지만 특위를 운영하면 경비가 든다”며 “실효성 없는 특위에 세금이 쓰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각 당도 특위 만들기 경쟁

각 정당이 지도부 지시에 따라 이슈 대응 차원에서 꾸리는 특위도 지나치게 남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내 특위나 태스크포스(TF)는 성과를 내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정쟁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민주당은 이달 들어 3개의 특위를 만들었다. 지난 11일에는 포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떠도는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며 허위정보조작(가짜뉴스)대책특위를 마련했다. 17일에는 “재벌, 금융, 공기업, 지방 토호세력 등에 겹겹이 쌓여 있는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생활적폐청산특위를 만들었다. 택시업계 이해관계와 공유경제서비스 신산업 확산 이슈가 맞붙은 ‘카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TF도 별도로 구성했다.

한국당도 이에 지지 않는다. 정부·공공기관이 양산하고 있는 일자리를 ‘가짜’라고 규정하며 이를 검증하기 위한 특위를 출범시켰다. 지난 9월에도 국가안보특위를 구성한 바 있다.

여야가 국회 차원에서 구성한 특위 중 성과가 있었던 경우는 19대 국회 때인 2014년 11월 꾸려진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특위’(위원장 정병국 의원) 정도다. 9개월여 기간에 정책토론회와 정부 현안질의, 현장 답사 등을 거쳐 백서를 냈고 ‘병영도서관’을 설립하자고 제안해 현재 전국 군부대 1600곳에 설치됐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병영특위처럼 운영할 게 아니면 특위를 아예 만들어선 안 된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