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사진)이 21일 환율조작국 지정기준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환율조작’ 의심을 하면서도 막상 현재 기준으로는 ‘환율조작국’ 지정이 어려운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美, 중국 겨냥해 "환율조작국 지정기준 바꿀 수 있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이스라엘 예루살렘 방문 중 “우리는 어느 시점에 평가 기준을 바꿔야할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개편 방향 두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환율조작을 광범위하게 정의하는 1988년 종합무역법을 활용하는 방안, 둘째는 환율조작국 지정기준을 바꾸는 방안이다.

현재 환율조작국 지정기준은 현저한 대미(對美) 무역흑자(연 200억달러 초과), 상당한 경상흑자(국내총생산(GDP)의 3% 초과), 지속적 한방향 시장개입(GDP의 2% 초과) 3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두가지 요건에 해당하거나 현저한 무역흑자만 해당하면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다. 미 재무부는 이에 따라 매년 4월과 10월 두차례 환율보고서를 펴내는데 지난 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선 한국·중국·일본·독일·스위스·인도 6개국을 종전처럼 관찰대상국으로 유지했다. 한국은 두가지 요건(현저한 대미 무역흑자, 상당한 경상흑자)에 해당했다. 가장 관심을 모은 중국은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지난해 3750억달러)에 해당해 관찰대상국으로 남았다.

당초 시장에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무역전쟁으로 미·중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당선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도 관계부처 합동으로 작성해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한 ‘미국의 제조업, 방위산업기지, 공급망 복원에 대한 평가와 강화’ 보고서에서 “중국은 위안화 평가 절하와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역사적으로 환율을 조작해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현행 기준으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했다. 대신 미 재무부는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무역 반칙 국가’로 묘사하며 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재무부는 “집요한 비관세장벽, 널리 퍼진 비시장적 메커니즘, 만연한 보조금 사용, 그 외의 불공정 관행 때문에 중국과 무역 상대국들의 경제적 관계가 왜곡된다”고 비난했다. 중국이 외환시장에서 환율에 얼마나 개입하는지를 공개하지 않는데 대해서도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므누신 재무장관도 별도 성명을 내 “중국의 통화 투명성 결여와 최근 그 통화의 약세에 대해 특별히 우려한다”고 밝혔다.

환율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위안화는 지난 6개월간 미 달러화 대비 10% 하락했다. 여기엔 중국 정부의 ‘의지’가 상당히 개입돼 있다는게 미 행정부 안팎의 분위기다. 게다가 중국은 환율보고서가 나와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한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보란듯이 미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를 0.25% 평가절하해(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상승)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므누신 장관이 이날 불쑥 환율조작국 지정기준 변경 얘기를 꺼낸 배경이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환율조작국 지정기준을 바꾸면 한국도 애궂게 지정요건에 해당돼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미국기업 투자시 금융지원 금지, 미 연방정부 조달시장 진입 금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환율 압박, 무역협정 제한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미·중 ‘환율전쟁’의 분수령은 오는 11월2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맞춰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이다. 여기서 미·중이 뚜렷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기준 변경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로선 미·중이 단기간에 접점을 찾긴 쉽지 않아 보인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지난 17일 미 CNBC와 인터뷰에서 “G20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것을 많이 얻지는 못할 것”이라면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무역 합의를 한 시간에 다 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