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靑이 들어야 할 남북경협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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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국제부 차장
‘김정일의 요리사’로 잘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는 저서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맥스, 2010년)에서 김정은 후계 구도를 확신하며 그 근거로 여러 일화를 소개했다. 그중 한 가지. 2001년 8월11일 원산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17세의 스위스 유학생 김정은은 오랜만에 만난 후지모토와 술을 마시며 다섯 시간에 걸친 긴 대화를 나눴다. 김정은은 중국이 개방개혁을 통해 공업, 상업, 농업, 호텔 등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가 앞으로 본보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되겠지”라고 자문자답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7년. 핵무기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은 경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트럼프·김정은 의기투합 호기
워싱턴특파원으로 3년간 취재해보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뼛속까지’ 기업인이다. 정치인은 통상 본인의 유불리에 따라 현안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자신이 없으면 시급한 현안도 뭉개 버린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북핵에 대해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수수방관했던 것처럼. 그러나 기업인 트럼프는 일을 어물쩍 넘기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되든 안 되든 ‘끝장’을 본다. 감세, 규제개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주(駐)이스라엘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등등. 트럼프는 지난 3월 김정은의 비핵화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한 뒤 8개월째 ‘밀당’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기자가 귀국 후 서울에서 참석하고 있는 한 남북경협 포럼엔 매주 건설과 관광, 제조, 법률 등 각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가해 뜨거운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한 참석자는 “미·북 관계가 이전과 질적으로 달라졌다”며 “북한 개방을 전제로 진출 준비를 서둘러야 할 분위기”라고 말했다. 포럼 주최 측은 해외에서도 남북 경협에 관한 세미나 포럼을 원하는 주문이 많다며 곧 해외 순회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대만큼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달 평양 남북한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 재계 총수 등 17명의 기업인은 사흘 동안 북한 인민군이 운영하는 양묘장(모종, 묘목 등을 기르는 곳)을 둘러보고, 이용남 내각부총리를 면담하는 등의 일정에 만족해야 했다. 남는 시간은 평양과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셀카 찍는 ‘소일거리’로 때웠다.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 방북한 기업인들의 후기는 대체로 물음표다.
'투자 환경' 만들면 알아서 간다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때문에 북측과 경협 논의를 깊숙이 진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대북제재, 투자보장 등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 설사 가까운 시일 내 대북제재가 풀리고, 김정은이 원산 남포 등을 열어 경협 길을 뻥 뚫어준다 해도 선뜻 대북 투자에 나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기업인을 돈만 밝히고 탈법을 일삼는 ‘준(準)범죄인’ 취급하며 세금을 올리고 적폐청산 구호 아래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기업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투자에 나서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정권이 바뀌면 ‘부역자’로 찍혀 ‘치도곤’을 당할 걱정도 앞선다.
청와대는 “일은 일”(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며 기업들에 대북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기업 환경만 마련된다면 정부가 팔을 비틀지 않아도, 김정은이 뒷방에서 이런저런 투자 요구를 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먼저 버선발로 북한에 달려갈 것이라는 게 기업인들 얘기다. 남북교류만 되면, 통일만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는 청와대 인사들이 새겨 들을 만한 대목이다.
psj@hankyung.com
트럼프·김정은 의기투합 호기
워싱턴특파원으로 3년간 취재해보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뼛속까지’ 기업인이다. 정치인은 통상 본인의 유불리에 따라 현안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자신이 없으면 시급한 현안도 뭉개 버린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북핵에 대해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수수방관했던 것처럼. 그러나 기업인 트럼프는 일을 어물쩍 넘기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되든 안 되든 ‘끝장’을 본다. 감세, 규제개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주(駐)이스라엘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등등. 트럼프는 지난 3월 김정은의 비핵화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한 뒤 8개월째 ‘밀당’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기자가 귀국 후 서울에서 참석하고 있는 한 남북경협 포럼엔 매주 건설과 관광, 제조, 법률 등 각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가해 뜨거운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한 참석자는 “미·북 관계가 이전과 질적으로 달라졌다”며 “북한 개방을 전제로 진출 준비를 서둘러야 할 분위기”라고 말했다. 포럼 주최 측은 해외에서도 남북 경협에 관한 세미나 포럼을 원하는 주문이 많다며 곧 해외 순회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대만큼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달 평양 남북한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 재계 총수 등 17명의 기업인은 사흘 동안 북한 인민군이 운영하는 양묘장(모종, 묘목 등을 기르는 곳)을 둘러보고, 이용남 내각부총리를 면담하는 등의 일정에 만족해야 했다. 남는 시간은 평양과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셀카 찍는 ‘소일거리’로 때웠다.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 방북한 기업인들의 후기는 대체로 물음표다.
'투자 환경' 만들면 알아서 간다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때문에 북측과 경협 논의를 깊숙이 진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대북제재, 투자보장 등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 설사 가까운 시일 내 대북제재가 풀리고, 김정은이 원산 남포 등을 열어 경협 길을 뻥 뚫어준다 해도 선뜻 대북 투자에 나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기업인을 돈만 밝히고 탈법을 일삼는 ‘준(準)범죄인’ 취급하며 세금을 올리고 적폐청산 구호 아래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기업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투자에 나서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정권이 바뀌면 ‘부역자’로 찍혀 ‘치도곤’을 당할 걱정도 앞선다.
청와대는 “일은 일”(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며 기업들에 대북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기업 환경만 마련된다면 정부가 팔을 비틀지 않아도, 김정은이 뒷방에서 이런저런 투자 요구를 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먼저 버선발로 북한에 달려갈 것이라는 게 기업인들 얘기다. 남북교류만 되면, 통일만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는 청와대 인사들이 새겨 들을 만한 대목이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