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취임 후 줄곧 의문을 갖고 있었다. 정부가 매년 수조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하는데 이 지원으로 돈을 벌었다는 기업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가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곳은 시장과 기업이었다. 홍 장관은 “민간이 제대로 된 R&D 사업을 선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이들을 통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지원하는 R&D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팁스(TIPS)’ 프로그램을 성공적인 지원 사례로 꼽았다.

팁스는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사업이다. 벤처업계에서도 “샤오미가 ‘대륙의 실수’라면 팁스는 ‘한국의 실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팁스는 초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민간 투자회사가 1억원 정도를 투자하면 정부가 5억원 이상(최대 3년 이내 9억원까지)을 매칭 투자해 주는 방식이다. 2013년 도입됐다.

현재 팁스 창업팀은 500여 개가 넘는다. 참여하는 민간 투자사도 44개에 달한다. 세계 100대 인공지능(AI) 기업에 선정된 ‘루닛’은 팁스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의료영상 인공지능(AI) 판독기술을 개발한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교수나 연구원이 중심이 돼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에 사업성 판단을 맡긴 게 적중했다”며 “팁스 참여 기업이라는 것 자체가 브랜드가 돼 투자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벤처캐피털과 액셀러레이터 등에 인센티브를 주며 참여를 유도한 것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매년 3~4개 회사와 함께 팁스 사업을 지원하는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민간도 위험 부담을 안고 투자하는 만큼 신중하게 기업을 선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장(현 중소벤처기업부) 재임 당시 팁스를 도입한 한정화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술 개발과 해외 마케팅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구성해 기업당 최대 10억원씩 지원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1억원씩 1000개 기업을 지원하기보다는 10억원씩 100개 기업에 지원하는 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