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들 스스로가 “법원 재판과 검찰 수사 등에서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인정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관예우 가능성을 완강히 부인해왔던 판사들조차 4명 가운데 1명(23.2%)꼴로 (판·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 특혜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판·검사 대상으로 전관예우 존재 여부를 묻는 조사는 이번에 처음 이뤄졌다. 대법원은 다음달 전관예우 근절 방안을 논의한다.

◆변호사 75.8% “전관예우 존재”

대법원 산하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는 24일 이 같은 내용의 ‘전관예우 실태조사 및 근절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지난 6월부터 석 달간 일반인 1014명과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직역 종사자 139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 법조 관련 종사자(법원·검찰청 직원 포함) 가운데 “전관예우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55.1%였다. 검사는 응답자 중 42.9%, 변호사는 75.8%가 인정했다. 이들은 그 근거를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찾았다. ‘(전관예우를) 실제 사건 처리과정에서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이 51.6%로 가장 높았고, ‘주변에서 경험한 사실을 직접 들었다’가 39.2%로 뒤를 이었다.

"돈 들어도 전관변호사 써라"…판·검사도 실토한 '전관예우'
전관 변호사가 실제 기소 여부와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응답률도 절반에 가까웠다. 설문조사 참여자 가운데 검사의 15.9%가 전관이 개입되면 “기소와 불기소 여부를 바꾼다”고 했으며, 판사의 13.3%는 “형사 재판의 결론을 바꿀 수 있다”고 답했다. 법조직역 종사자 5명 중 1명꼴로 “돈이 더 들더라도 전관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권한다”고 답했다.

◆전관 변호사 ‘전화 한 통’에 5000만원

법조계는 대다수 국민이 체감하는 전관예우를 이제서야 판·검사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을 뿐이란 반응이다. 그간 전직 대법관이나 검사장 출신이 변호사 개업 후 몇 개월 만에 수십억원을 버는 일이 흔했다. 국무총리 후보에 올랐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퇴임 후 5개월간 16억원을 벌었고, 검찰 내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렸던 홍만표 전 검사장은 변호사 개업 후 한 해 챙긴 수임료만 91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법관 출신 전관이 대법원 상고심 사건에 이름만 올려주는 대가로 받는 ‘도장값’이 3000만원, 담당 판·검사에게 전화 한 통 넣어주는 ‘전화변론’ 시세는 5000만원이 공공연한 관행”이라고 전했다.

"돈 들어도 전관변호사 써라"…판·검사도 실토한 '전관예우'
이들 전관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면 법원과 검찰로부터 ‘선배 예우’ 차원에서 각종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 통설이다. 검찰 출석 시기를 조율하거나 재판 증거 신청 등에서 상당히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한 7년차 대형 로펌 변호사는 “민·형사 사건에선 불구속 수사나 보석 결정, 양형 등 판·검사의 재량이 발휘되는 부분에서 전관의 영향력이 발휘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법발전위는 이번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다음달 전관예우 근절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변호사 선임과 관련한 정보를 일반에 공개하는 변호사 중개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전관이 변호사로 나오지 않도록 하는 ‘평생법관제’ 등의 방안도 해법으로 제시된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미국식 ‘시니어 법관’처럼 은퇴한 고위 판사나 검사가 계속 공직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라며 “얼마 전 여수시법원에서 근무를 시작한 박보영 전 대법관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