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적' 실세 왕세자 궁지로 몰 것" 전망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소속 '정의개발당'(AKP) 의원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과 관련, 사우디 정부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은 약 20분 가량 카슈끄지 사건 수사 내용과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살해' 또는 '살인죄'라는 뜻의 단어 '지나예트'(cinayet)를 무려 15회나 반복했다.
그는 카슈끄지를 "야만적 살해의 피해자"라고 불렀다.
카슈끄지가 사우디 요원들과 몸싸움 끝에 우발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사우디 정부의 발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또 "(사우디가) 소수 치안·정보 요원에 이번 사건의 책임을 전가한다면 터키도 국제사회도 수긍하지 못한다"며 사우디 정부의 '꼬리 자르기'식 발표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망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람의 시신이 왜 없는 것이냐? 요원들이 시신 처리를 맡겼다는 '터키인 협력자'는 누구냐? 그들이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았는가?"라고 물으며, "터키는 답을 구한다"고 사우디를 압박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언어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아슬아슬한 수위를 넘나들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살만 국왕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중요한 수사는 살인과 아무 관련이 없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팀에 맡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왕세자에게 진상규명 책임을 맡긴 국왕의 결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또 "이 사건은 정치적 살인"이라면서 "다른 나라에 공범이 있다면 그들 역시 수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처럼 수위 높은 발언으로 사우디와 각을 세우는 배경에 대해 최대한 실리를 챙기려는 전략적 압박이라는 의견과, 무함마드 왕세자를 겨냥해 진검승부를 건 것이라는 해석이 엇갈린다.
고질적인 경상수지적자와 대외 부채로 올 들어 위기설에 시달린 터키에 사우디 오일머니는 든든한 '생명줄'이 될 수 있다.
터키는 또 사우디가 시리아에서 이란을 견제할 세력으로 쿠르드 민병대를 지원하려는 계획에 극도로 부정적이다.
터키는 자국의 분리주의를 자극할 수 있는 쿠르드 민병대, 즉 '인민수비대'(YPG)를 주요 안보 위협으로 여긴다.
터키가 사우디와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면 경제적 지원과 시리아 정책 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
숙청을 일삼는 '21세기 술탄'에서 '정의롭고 민주적인 이슬람권 대표 지도자'로 에르도안 개인의 이미지 쇄신은 덤이다.
이스탄불 소재 알튼바시대학의 아흐메트 타심 한 연구원(국제관계학)은 "터키는 장기적인 게임을 벌이고 있다"면서 "오늘 에르도안 대통령의 연설은 매우 신중하게 진행하는 긴장전략의 한 과정으로 보인다"고 AP통신에 추측했다.
베이루트 소재 카네기중동센터의 마하 야히아 소장도 "에르도안은 이번 사건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실리와 양보를 끌어내는 기회로 삼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터키와 사우디 왕실, 특히 무함마드 왕세자의 사이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고, 터키가 왕세자를 궁지로 몰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일간지 휘리예트의 필진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략에 정통하다고 알려진 압둘카디르 셀위는 22일 칼럼에서 "사우디 왕세자가 문책을 당하고 왕세자에서 폐위되기 전까지 우리는 사건을 종결할 수 없다"고 썼다.
셀위는 "우리는 터키의 적인 사우디 왕세자와 (앞으로) 50년을 지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