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미국 국방부 관리 지적…INF 파기되면 美, 中겨냥 탄도미사일 증강배치 전망
"美 중거리핵전력 조약 폐기는 中겨냥…미중 군사대화 시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폐기를 선언한 것은 실질적으로 중국의 재래식 전력 확충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과 중국 간 군사 대화가 시급하다고 전 미국 국방부 관리가 지적했다.

미 국방부에서 중국 담당 국장을 지낸 드류 톰슨은 2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보다 먼저 중국과 미국의 장군들이 만나 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방문 연구원으로 있는 톰슨은 INF 폐기가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지만 미국과 러시아 간의 전략적 안정 상태는 비록 전보다는 다소 약화하더라도 전반적 유지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 단계에서 더욱 큰 우려는 미국과 중국 간 전략적 안정 부재 상태라고 말했다.

INF는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으로 사거리가 500∼5천500㎞인 중·단거리 탄도·순항 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냉전시대 군비 경쟁을 종식한 문서로 꼽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러시아가 INF 조약을 준수하지 않는다며 이 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새 협정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해당 무기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 이번 조치가 중국까지 염두에 둔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번 움직임이 중국의 직접적 군사력이 미치는 동아시아에서 재래식 전력을 증강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군은 그간 태평양 역내의 억지력 확보를 위해 주로 해군 함정과 공군 폭격기에 의존했다.

그 사이 중거리 전력 개발에 구속을 받지 않는 중국은 '항모 킬러'로 불리는 DF-21 지대함 미사일을 실전 배치하는 등 전력을 대폭 증강함에 따라 미국은 역내 억지력을 재구축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미국 국방부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처음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 전략폭격기에 의한 '핵전력 삼위일체'(Nuclear Triad)를 구축했다고 명시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INF를 폐기하면 재래식 무기를 확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군비 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상발사 중거리 탄도미사일 같은 무기들을 태평양에 증강 배치함으로써 중국의 공세에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올해 들어 치열한 무역 분쟁을 벌이는 가운데 양국은 남중국해, 대만해협 등지에서 위태위태한 군사적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웃 나라들과의 분쟁수역인 남중국해를 독식하려 하고,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집권 이후 대만을 향한 군사적 압력을 높여가고 있다.

이에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내걸고 최첨단 이지스 함정을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 투입하는 사실상의 무력시위로 대응하면서 미중 양측 간 우발적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미 해군 구축함 디케이터함이 '항행의 자유' 작전 차원에서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南沙>군도)의 게이븐 암초(중국명 난쉰자오<南薰礁>) 인근 해역을 항해하던 중 중국의 뤼양(旅洋)급 구축함이 45야드(41m)까지 접근해와 충돌 위기에 처한 바 있다.

톰슨은 "군사당국간 대화는 쉽고, 비용이 들지 않는 옵션"이라며 "이를 통해 상호 이해와 계산착오 회피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