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아이폰을 중국과 러시아가 도청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미 정보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24일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미국 대통령의 통화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NYT는 “미 정보기관은 중국과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폰을 도청해온 사실을 알게 됐다”며 “특히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 심화를 막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하는 방식과 그가 누구의 말에 귀 기울이는지를 파악하려고 도청 작업을 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3대의 아이폰을 갖고 있다. 이 중 두 대는 미 국가안보국(NSA)의 보안 처리를 거쳐 트윗 등을 할 때 주로 쓴다. 하지만 나머지 한 대는 일반인들이 쓰는 아이폰과 별 차이 없어 도청에 취약하다.

중국 정부는 이 아이폰을 도청해 트럼프 대통령이 누구와 자주 통화하는지 명단을 만들고 이들을 상대로 로비를 해왔다고 NYT는 전했다. 명단에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만 최고경영자(CEO)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계의 거물인 스티브 와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슈워츠만은 중국 칭화대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고, 와인은 마카오에 카지노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신뢰하는 사람들을 통해 중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와인의 변호인은 “우리 고객은 이미 은퇴했다”며 코멘트를 거부했다. 블랙스톤 대변인은 중국 정부가 슈워츠먼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면서도 “그가 두 나라 국가수반의 요청이 있을 때 양국의 중요 현안에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왔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유력 사업가나 학자 등을 통해 미국 지도자들에게 비공식적 네트워크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은 오랜 관행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와서 차이점은 “대통령의 전화를 직접 도청해 누가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고, 어떤 주장이 효과가 있는지를 훨씬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아이폰 도청은 안드로이드폰에 비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외 휴대폰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기지국과 케이블 등을 통과할 때는 쉽게 가로채기를 할 수 있다고 정보 요원들은 전했다. NYT는 “전화 통화 엿듣기는 매우 쉬운 방법이며 미 정보기관원들도 주요 해외 지도자의 전화를 도청하는 것이 필수 업무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 NS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전화를 도청한 걸 예로 들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런 위험 때문에 가능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다고 NYT는 지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아이폰을 갖고 있었지만 그 전화기는 통화를 할 수 없고 측근들로부터 이메일만 받을 수 있도록 보안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이 휴대폰 대신 보안 처리가 된 유선전화를 사용하도록 요청해도 이를 거부했다고 NYT는 전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