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여야 4당이 추진하겠다고 합의한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설치를 놓고 법조계가 양쪽으로 갈려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양새다. ‘사법 살인’이라는 오명을 쓴 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2차 인혁당) 사건의 재판이 당시 특별법원에서 이뤄졌다는 사실까지 거론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법원 내부와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별재판부, 유신 때나 하던 것"…법조계 쓴소리
◆“인혁당 비상군법회의도 특별재판부”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사법농단 특별재판부’가 과거 인혁당 사건의 재판을 맡았던 ‘비상군법회의’와 법적 실체가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한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과거 유신 체제에서 대통령 긴급조치에 따라 ‘비상군법회의’라는 특별법원이 설치돼 재판권을 행사한 전례가 있다”며 “지금은 ‘사법 살인’이라고 비판받는 2차 인혁당 사건이 바로 이곳에서 유죄 판결이 났다”고 지적했다.

특별재판부에 대한 위헌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행정법원장 등을 지낸 황병하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글이 촉발제가 됐다. 황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절대주의 국가에서처럼 국왕이 순간의 기분에 따라 담당 법관을 정하거나, 법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 버리면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한 책 내용을 인용해 위헌 문제를 제기했다.

황 부장판사가 인용한 책은 《지금 다시, 헌법》이라는 제목의 헌법 해설서로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2016년 발간했다.

이어 윤 교수도 위헌론에 힘을 보탰다. 윤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개별 사건을 재판할 법관을 선임함으로써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것은 회피돼야 한다. 권리를 추구하는 시민이 그렇게 선임된 법관을 두려워하게 된다면 (공공의) 신뢰는 손상된다”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시 내용을 언급하며 특별재판부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거부 의사 밝혀야”

이에 맞서 정치권에서는 특검과 특별재판부의 비교 논리를 꺼내들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검찰이 국민이 믿지 못할 수사를 하면서 특검이 생긴 것 아니냐”며 “사법부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초법적인 특별재판부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무리한 논리라는 지적이다. 한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특별재판부는 특검과 달리 유죄를 예단하고 처벌을 전제한 ‘인민재판’을 하더라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 대법원장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장이 명확한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훗날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재옥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도 “특별재판부 추진은 결국 김 대법원장에 대한 불신”이라며 “김 대법원장 사퇴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고윤상/하헌형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