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26일 장중 2% 넘게 하락해 2000선 붕괴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전날 미국 증시가 상승하고, 주요 아시아 증시 하락폭이 1%를 넘지 않은 가운데 나온 ‘나홀로’ 급락이다. 전문가들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국내 기관의 매수 공백 때문에 국내 증시가 유난히 더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코스피, 아시아 증시서 '나홀로' 급락
◆10월 하락폭 13.5%…금융위기 수준

이날 코스피지수는 36.15포인트(1.75%) 내린 2027.15로 마감했다. 2017년 1월2일(2026.16) 후 최저점이다. 이달 하락폭은 13.5%로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월(-14.4%) 후 가장 컸다.

코스피지수는 장중 2.78% 떨어진 2008.86까지 밀렸다. 2016년 12월7일 이후 2년여 만에 2000선이 무너질 위기였다. 오후 들어 기관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낙폭을 줄였다. 저가 매수에 장중 2.64%까지 떨어졌던 SK하이닉스가 3.55% 상승 반전해 마감했고, 1.46% 떨어졌던 삼성전자도 낙폭을 줄여 전날 종가와 같은 4만1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반도체와 2차전지, 자동차를 제외한 대부분 종목이 내렸다. 유가증권시장에선 넷마블(-7.83%) OCI(-7.54%) 대우건설(-7.25%) 삼성SDS(-6.44%) 대우조선해양(-6.12%) 등의 낙폭이 컸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이 최근 한국 주식을 많이 팔고 있는데 달러 강세와 경기 둔화, 무역분쟁 등 알려진 악재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실적 부진과 대외 불확실성을 모두 반영한 지수 수준”이라며 “문제는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팽배한 불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금 증시에서는 실적도,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도, 수급도 못 믿겠다는 불신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코스피지수는 12개월 선행 실적 기준으로 주가수익비율(PER: 시가총액/순이익) 7.83배, 주가순자산비율(PBR: 시가총액/순자산) 0.83배로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이다.

◆연기금·운용사 매수 ‘버팀목’ 사라져

‘증시 버팀목’ 역할을 하던 연기금과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의 매수세가 사라진 점도 증시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수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밸류본부장은 “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빠지는 것은 기관 수급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기관 수급이 비어 있으니 공매도 세력이 안심하고 마음껏 공매도를 해 주가가 더 빠지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국내 연기금은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824억원 순매수했다. 2016년 3조1084억원, 2017년 3조2486억원에서 급격히 줄었다. 특히 이달 들어선 외국인을 따라 1471억원을 순매도했다. 국민연금이 국내 투자 비중을 줄이고, 해외 투자를 늘리기로 한 영향도 있지만 장기 투자를 하는 연기금이 단기 실적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자산운용사(투신)는 올 들어 국내 증시에서 2595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달 들어선 2777억원을 순매도했다. 펀드 환매로 매수 여력이 줄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시장이 오르면 환매하고 떨어지면 자금이 유입되는 액티브 펀드의 패턴 공식이 깨졌다”며 “최근 국내 펀드의 저가 매수·고가 매도 전략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임근호/최만수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