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아프리카·아랍문화 고스란히 녹아든 몰타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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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조은영의 '무브무브' (5) 신이 빚어낸 지중해의 섬 몰타
발길 닿는 곳마다 박물관
눈길 가는곳마다 유적지
조은영의 '무브무브' (5) 신이 빚어낸 지중해의 섬 몰타
발길 닿는 곳마다 박물관
눈길 가는곳마다 유적지
몰타(Malta)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 남쪽으로 93㎞,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동쪽으로 284㎞ 떨어져 있는 지중해 정가운데에 있는 섬이다. ‘지중해의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리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몰타공화국(Republic of Malta)! 제주도의 6분의 1 크기의 작은 나라는 세 개의 유인도, 작은 무인도들까지 합쳐 총 6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유인도 중 가장 큰 몰타섬은 문화, 상업, 행정의 중심지이고 두 번째로 큰 섬인 고조(Gozo)는 몰타섬에서 25분 거리의 한적하고 조용한 섬이다. 지난 여행기에 고조섬 이야기를 했었다. 코미노(Comino)는 두 섬 가운데에 있는 가장 작은 섬으로 크기가 3.5㎢밖에 되지 않는다. 몰타에 가기 전, 나는 그곳을 그저 예쁘게 잘 꾸며진 지중해의 휴양지쯤으로 생각했었다. 막상 가서 보니 이 나라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랍의 문화가 골고루 녹아 있는 인류 문화와 역사의 전시장이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1㎢당 가장 많은 유적지가 있는 곳이니,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은 어쩌면 그저 덤인지도 모른다.
몰타섬=글: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 사진: 조은영, 무브매거진
고대부터 현재까지가 공존하는 섬
몰타 여행객들은 관심사에 따라 세 가지 정도의 키워드로 활동 영역이 정해진다. 유적지를 다니거나, 리조트에서 쉬거나, 지중해 바다를 누비며 다이빙을 즐기거나!
먼저 몰타공화국의 메인 섬인 몰타섬에선 이 세 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몰타는 고대부터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유럽 주요 문명들이 몰타를 거쳐갔다.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것도 7000년의 역사가 남긴 고고학적 유적지들이 섬 전체에 남아 있다. 몰타 여행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단어 중 하나는 성요한기사단(몰타기사단)이다.
십자군 원정 때 순례자와 병사들을 치료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가 군사조직으로 변했던 성 요한기사단은 오스만투르크와 싸우며 키프로스섬, 로도스섬, 크레타를 거쳐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몰타로 와 1530년부터 200년 동안 몰타를 본거지로 삼았다. 당시 3만 오스만투르크 군대를 300명의 성 요한기사단과 몰타인들이 물리친 이야기는 유명하다. 1798년 섬은 잠시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다가 1814년부터 약 150년간은 영국의 지배를 당했다. 몰타공화국으로 독립한 것은 1964년이고, 2004년부터는 유럽연합(EU)에 가입됐다. 유로가 통용되고 사람들은 영어와 몰타어를 쓴다.
문화유산 도시, 발레타와 스리시티즈
몰타섬의 유적지 탐방 일정은 수도인 발레타(Valletta)부터 시작된다. 발레타는 1565년 성 요한기사단이 3만 대군, 오스만투르크를 물리친 이후 1566년부터 계획적으로 만든 요새 도시다. 이탈리아인 건축가 프란체스코 라파렐리(Francesco Laparelli)의 설계를 바탕으로 르네상스의 건축법과 당대 도시계획의 첨단기술을 결합해 도시 전체를 성벽과 보루로 둘러싸고 내부 구간 정리를 했다. 당시 기사단의 우두머리였던 장 파리소 드 발레트(Jean Parisot de Valette)의 이름을 따서 발레타라 이름 지었고, 수도도 임디나에서 발레타로 이전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 발레타는 건너편에서 보면 길고 큰 군함이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수기가 아니어도 거리엔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축제기간엔 거리에 빨간 휘장이 둘러쳐진다.
발레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아마도 즉 ‘야외박물관(Open-air Museum)’이란 말일 것이다. 발 닿는 곳이 모두 유적지이고 박물관이다.
발레타의 성당 중 바로크 양식의 성 요한 공동 대성당은 ‘보석 중의 보석’이다. 이 대성당은 16세기 성 요한기사단들이 남긴 대표적인 유산으로 아치형 천장에는 성 요한의 일생이 그려져 있고, 바닥엔 400여 명 기사들의 대리석 묘비가 깔려 있다. 7000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국립고고학박물관, 대통령의 집무실과 의회로 사용되고 있는 성 요한기사단장의 궁전, 항구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옥상정원 등도 둘러볼 만하다.
발레타의 옥상정원에서 내려다 보면 그랜드하버 저편에 세 도시, 코스피쿠아, 빅토리오사, 센글리아, 더스리시티즈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 도시들은 워터택시인 디사를 타고 수로로 돌아보는 것이 베스트다. 작고 컬러풀한 보트 ‘디사’는 몰타 버전의 곤돌라라 할 수 있는데 이 ‘디사’를 타고 둘러보는 보트 여행은 꽤 낭만적이며 몰타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고 싶다.
과거의 도시, 임디나(Mdina)
몰타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임디나는 발레타 이전 2200년 동안 몰타의 수도였다. 옛날부터 귀족들만 살았고 지금도 상류층이 거주한다는 임디나는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 문 앞에서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마차가 있어 올라탔다.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와 함께 골목을 돌아보며 중세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 좁고, 긴 S자 모양으로 휘어진 골목들은 적들의 화살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었다. 임디나도 발레타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임디나에서 가장 큰 건축물은 성바울 성당이다. AD 60년께 사도바울이 기독교 선교죄로 체포돼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가던 중 몰타 인근에서 난파를 당해 3개월간 몰타에서 머물며 전도를 했다. 이때 로마인 파견관이었던 보블리오가 기독교로 개종해 후에 몰타 최초의 주교가 됐다. 사도행전 28장 1절에 나오는 ‘멜리데’라는 섬이 바로 몰타를 지칭한다. 바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바울 성당의 내부에 들어가보면 그의 일생이 그림으로 표현된 천장화를 볼 수 있다. 이 성당은 1690년 지진으로 무너졌다가 1702년에 재건된 것이다. 사도바울이 몰타에 정박한 2월10일엔 ‘성바울 난파 축제’가 매년 열릴 만큼 몰타는 기독교 성지로도 자부심이 강하다.
몰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카페, 폰타넬라(Fontanella)는 전망뿐만 아니라 지중해에서 가장 달고 맛있다는 초콜릿 케이크가 명물이다. 폰타넬라 외에도 임디나의 골목길에는 작고 귀여운 숍들이 많아 하나씩 들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샤슬록, 생줄리앙과 슬레이마
몰타의 수공예품 몰타레이스는 아름답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몰타레이스 제품을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은 한 어촌마을의 노천시장이었다. 지금도 하늘거리는 하얀 레이스 사이로 알록달록 전통 배 ‘루츠’가 바다에 떠 있었던 그 시장이 눈에 선하다. 이 어촌의 이름은 마샤슬록(Marsaxlokk)이다. 싱싱한 해산물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는데, 어느 집을 가도 기본은 하니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몰타 음식은 몰타 와인과 함께 즐기라는 것이다. 음식값도 술값도 저렴하다. 일요일엔 해산물 시장이 열리고, 노천시장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있어 볼거리가 가득하다. 1989년 고르바초프와 조지 부시가 만나 탈냉전을 선언한 곳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생줄리앙은 몰타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골목마다 영어 학원에 다니는 전 세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카지노, 클럽, 피자집, 고조섬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전통식당도, 영국식 펍도, 시칠리안 스낵푸드를 파는 캐주얼한 카페도, 중동식당까지 한마디로 먹고 마시고 놀기 좋은 최중심지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인터컨티넨털, 웨스틴드래고나라리조트, 르메르디앙 등… 최고급 리조트들도 줄지어 있다.
슬레이마(Sleima) 지역으로 이동하면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바다와 발레타의 전경이 압도적이다. 유럽에서 온 게으른 휴양객들은 바다를 보고 앉아 하루 종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슬레이마에 있는 더 포인트 몰(The Point Mall)엔 익숙한 패션 브랜드와 이탈리안 커피집, 레스토랑들이 있어 시간 보내기 좋다.
유적지와 지중해 바다, 몰타의 보석
한편 몰타엔 큰 돌을 쌓아 만든 ‘거석사원’이 곳곳에 분포한다. 이들은 피라미드나 스톤헨지보다도 시대가 앞서는,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몰타섬엔 하가르 임(Hagar Qim), 므나이드라(Mnajdra), 타르젠(Tarxien), 스코르바(Skorba), 타하그라트(Ta’Hagrat) 등 5개의 신전이 있는데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바다 성애자들에게도 몰타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몰타섬 남쪽 끝에 있는 블루그로토(Blue Grotto, 푸른 동굴)엔 투명한 물빛과 해식동굴,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동굴 입구의 일부분이 바다에 잠겨있기 때문에 배를 타고 들어가 보면 왜 이곳이 ‘푸른 동굴’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선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에는 난생처음 보는 푸른색 바다가 눈부신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오직 다이빙만 하러 몰타에 오는 인구가 10%가 넘을 정도로 몰타는 다이버들의 천국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다이빙 포인트만 해도 60여 곳이 넘는다.
잉크를 뿌린 듯한 강렬한 진 파란색 지중해 바다는 길을 걷다가도, 차를 타고 아무데나 내려도 가깝게 있다. 최고급 호텔에 머무는 이나, 호스텔에 머무는 이나, 아무 때고 첨벙첨벙 뛰어들 수 있는 몰타의 바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꼬불꼬불 만과 곶이 많아 해안선이 긴 몰타의 바다는 거친 파도가 없고, 얕았고, 모래 대신 석회암이 덮여 있어 신기하기도 했다. 바다 수영을 겁내는 이들도 두려움 없이 물에 몸을 담글 수 있을 것이다.
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조은영 여행작가는 한 권에 한 지역, 한 도시, 한 마을만 이야기하는 트래블 매거진, MOVE의 발행인입니다. 책에서 못다한 그곳의 깊은 이야기를 ‘여행의 향기’에 풀어 놓습니다.
여행 메모
몰타공화국의 수도는 발레타다. 면적은 316㎢로 제주도의 6분의 1 정도다. 몰타로 가려면 유럽 대도시에서 에어몰타로 연결하면 된다. 배편으로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페리로 입국하면 된다. 몰타는 영어와 몰타어를 쓴다. 몰타어는 아랍어와 비슷하고 라틴어 문법과 어휘가 섞여 있다. 다수가 몰타인이지만 미국인, 영국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아랍인, 동유럽인들까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산다. 인구는 약 42만 명으로 인구의 90%가 몰타섬에 거주한다. 통화는 유로를 쓰며 한국보다 8시간 늦다. 종교는 가톨릭이 96% 이상으로 유럽에서 가톨릭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엔 고온건조, 겨울엔 온난습윤하다. 사실상 1년 내내 휴양객들에게는 매력적인 곳. 겨울 시즌인 11, 12월에도 최고 기온 17~21도를 유지한다.
몰타섬=글: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 사진: 조은영, 무브매거진
고대부터 현재까지가 공존하는 섬
몰타 여행객들은 관심사에 따라 세 가지 정도의 키워드로 활동 영역이 정해진다. 유적지를 다니거나, 리조트에서 쉬거나, 지중해 바다를 누비며 다이빙을 즐기거나!
먼저 몰타공화국의 메인 섬인 몰타섬에선 이 세 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몰타는 고대부터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유럽 주요 문명들이 몰타를 거쳐갔다.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것도 7000년의 역사가 남긴 고고학적 유적지들이 섬 전체에 남아 있다. 몰타 여행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단어 중 하나는 성요한기사단(몰타기사단)이다.
십자군 원정 때 순례자와 병사들을 치료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가 군사조직으로 변했던 성 요한기사단은 오스만투르크와 싸우며 키프로스섬, 로도스섬, 크레타를 거쳐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몰타로 와 1530년부터 200년 동안 몰타를 본거지로 삼았다. 당시 3만 오스만투르크 군대를 300명의 성 요한기사단과 몰타인들이 물리친 이야기는 유명하다. 1798년 섬은 잠시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다가 1814년부터 약 150년간은 영국의 지배를 당했다. 몰타공화국으로 독립한 것은 1964년이고, 2004년부터는 유럽연합(EU)에 가입됐다. 유로가 통용되고 사람들은 영어와 몰타어를 쓴다.
문화유산 도시, 발레타와 스리시티즈
몰타섬의 유적지 탐방 일정은 수도인 발레타(Valletta)부터 시작된다. 발레타는 1565년 성 요한기사단이 3만 대군, 오스만투르크를 물리친 이후 1566년부터 계획적으로 만든 요새 도시다. 이탈리아인 건축가 프란체스코 라파렐리(Francesco Laparelli)의 설계를 바탕으로 르네상스의 건축법과 당대 도시계획의 첨단기술을 결합해 도시 전체를 성벽과 보루로 둘러싸고 내부 구간 정리를 했다. 당시 기사단의 우두머리였던 장 파리소 드 발레트(Jean Parisot de Valette)의 이름을 따서 발레타라 이름 지었고, 수도도 임디나에서 발레타로 이전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 발레타는 건너편에서 보면 길고 큰 군함이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수기가 아니어도 거리엔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축제기간엔 거리에 빨간 휘장이 둘러쳐진다.
발레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아마도 즉 ‘야외박물관(Open-air Museum)’이란 말일 것이다. 발 닿는 곳이 모두 유적지이고 박물관이다.
발레타의 성당 중 바로크 양식의 성 요한 공동 대성당은 ‘보석 중의 보석’이다. 이 대성당은 16세기 성 요한기사단들이 남긴 대표적인 유산으로 아치형 천장에는 성 요한의 일생이 그려져 있고, 바닥엔 400여 명 기사들의 대리석 묘비가 깔려 있다. 7000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국립고고학박물관, 대통령의 집무실과 의회로 사용되고 있는 성 요한기사단장의 궁전, 항구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옥상정원 등도 둘러볼 만하다.
발레타의 옥상정원에서 내려다 보면 그랜드하버 저편에 세 도시, 코스피쿠아, 빅토리오사, 센글리아, 더스리시티즈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 도시들은 워터택시인 디사를 타고 수로로 돌아보는 것이 베스트다. 작고 컬러풀한 보트 ‘디사’는 몰타 버전의 곤돌라라 할 수 있는데 이 ‘디사’를 타고 둘러보는 보트 여행은 꽤 낭만적이며 몰타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고 싶다.
과거의 도시, 임디나(Mdina)
몰타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임디나는 발레타 이전 2200년 동안 몰타의 수도였다. 옛날부터 귀족들만 살았고 지금도 상류층이 거주한다는 임디나는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 문 앞에서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마차가 있어 올라탔다.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와 함께 골목을 돌아보며 중세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 좁고, 긴 S자 모양으로 휘어진 골목들은 적들의 화살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었다. 임디나도 발레타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임디나에서 가장 큰 건축물은 성바울 성당이다. AD 60년께 사도바울이 기독교 선교죄로 체포돼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가던 중 몰타 인근에서 난파를 당해 3개월간 몰타에서 머물며 전도를 했다. 이때 로마인 파견관이었던 보블리오가 기독교로 개종해 후에 몰타 최초의 주교가 됐다. 사도행전 28장 1절에 나오는 ‘멜리데’라는 섬이 바로 몰타를 지칭한다. 바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바울 성당의 내부에 들어가보면 그의 일생이 그림으로 표현된 천장화를 볼 수 있다. 이 성당은 1690년 지진으로 무너졌다가 1702년에 재건된 것이다. 사도바울이 몰타에 정박한 2월10일엔 ‘성바울 난파 축제’가 매년 열릴 만큼 몰타는 기독교 성지로도 자부심이 강하다.
몰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카페, 폰타넬라(Fontanella)는 전망뿐만 아니라 지중해에서 가장 달고 맛있다는 초콜릿 케이크가 명물이다. 폰타넬라 외에도 임디나의 골목길에는 작고 귀여운 숍들이 많아 하나씩 들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샤슬록, 생줄리앙과 슬레이마
몰타의 수공예품 몰타레이스는 아름답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몰타레이스 제품을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은 한 어촌마을의 노천시장이었다. 지금도 하늘거리는 하얀 레이스 사이로 알록달록 전통 배 ‘루츠’가 바다에 떠 있었던 그 시장이 눈에 선하다. 이 어촌의 이름은 마샤슬록(Marsaxlokk)이다. 싱싱한 해산물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는데, 어느 집을 가도 기본은 하니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몰타 음식은 몰타 와인과 함께 즐기라는 것이다. 음식값도 술값도 저렴하다. 일요일엔 해산물 시장이 열리고, 노천시장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있어 볼거리가 가득하다. 1989년 고르바초프와 조지 부시가 만나 탈냉전을 선언한 곳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생줄리앙은 몰타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골목마다 영어 학원에 다니는 전 세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카지노, 클럽, 피자집, 고조섬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전통식당도, 영국식 펍도, 시칠리안 스낵푸드를 파는 캐주얼한 카페도, 중동식당까지 한마디로 먹고 마시고 놀기 좋은 최중심지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인터컨티넨털, 웨스틴드래고나라리조트, 르메르디앙 등… 최고급 리조트들도 줄지어 있다.
슬레이마(Sleima) 지역으로 이동하면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바다와 발레타의 전경이 압도적이다. 유럽에서 온 게으른 휴양객들은 바다를 보고 앉아 하루 종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슬레이마에 있는 더 포인트 몰(The Point Mall)엔 익숙한 패션 브랜드와 이탈리안 커피집, 레스토랑들이 있어 시간 보내기 좋다.
유적지와 지중해 바다, 몰타의 보석
한편 몰타엔 큰 돌을 쌓아 만든 ‘거석사원’이 곳곳에 분포한다. 이들은 피라미드나 스톤헨지보다도 시대가 앞서는,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몰타섬엔 하가르 임(Hagar Qim), 므나이드라(Mnajdra), 타르젠(Tarxien), 스코르바(Skorba), 타하그라트(Ta’Hagrat) 등 5개의 신전이 있는데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바다 성애자들에게도 몰타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몰타섬 남쪽 끝에 있는 블루그로토(Blue Grotto, 푸른 동굴)엔 투명한 물빛과 해식동굴,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동굴 입구의 일부분이 바다에 잠겨있기 때문에 배를 타고 들어가 보면 왜 이곳이 ‘푸른 동굴’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선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에는 난생처음 보는 푸른색 바다가 눈부신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오직 다이빙만 하러 몰타에 오는 인구가 10%가 넘을 정도로 몰타는 다이버들의 천국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다이빙 포인트만 해도 60여 곳이 넘는다.
잉크를 뿌린 듯한 강렬한 진 파란색 지중해 바다는 길을 걷다가도, 차를 타고 아무데나 내려도 가깝게 있다. 최고급 호텔에 머무는 이나, 호스텔에 머무는 이나, 아무 때고 첨벙첨벙 뛰어들 수 있는 몰타의 바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꼬불꼬불 만과 곶이 많아 해안선이 긴 몰타의 바다는 거친 파도가 없고, 얕았고, 모래 대신 석회암이 덮여 있어 신기하기도 했다. 바다 수영을 겁내는 이들도 두려움 없이 물에 몸을 담글 수 있을 것이다.
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조은영 여행작가는 한 권에 한 지역, 한 도시, 한 마을만 이야기하는 트래블 매거진, MOVE의 발행인입니다. 책에서 못다한 그곳의 깊은 이야기를 ‘여행의 향기’에 풀어 놓습니다.
여행 메모
몰타공화국의 수도는 발레타다. 면적은 316㎢로 제주도의 6분의 1 정도다. 몰타로 가려면 유럽 대도시에서 에어몰타로 연결하면 된다. 배편으로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페리로 입국하면 된다. 몰타는 영어와 몰타어를 쓴다. 몰타어는 아랍어와 비슷하고 라틴어 문법과 어휘가 섞여 있다. 다수가 몰타인이지만 미국인, 영국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아랍인, 동유럽인들까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산다. 인구는 약 42만 명으로 인구의 90%가 몰타섬에 거주한다. 통화는 유로를 쓰며 한국보다 8시간 늦다. 종교는 가톨릭이 96% 이상으로 유럽에서 가톨릭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엔 고온건조, 겨울엔 온난습윤하다. 사실상 1년 내내 휴양객들에게는 매력적인 곳. 겨울 시즌인 11, 12월에도 최고 기온 17~21도를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