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는 바다 위 특급호텔…24시간 호사 누리며 페낭·랑카위 찍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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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싱가포르에서 떠나는 말레이시아 크루즈 여행
축구장 3개 크기 크루즈…낮엔 자쿠지에서 모히토 한 잔, 밤엔 뮤지컬 보고 댄스파티
11만6000t급 사파이어 프린세스호
호텔급 객실에 수영장·공연장 갖춰
동서양 잇는 페낭섬이 첫번째 기항지
랑카위에선 열대우림·해변 여행 동시에
싱가포르에서 떠나는 말레이시아 크루즈 여행
축구장 3개 크기 크루즈…낮엔 자쿠지에서 모히토 한 잔, 밤엔 뮤지컬 보고 댄스파티
11만6000t급 사파이어 프린세스호
호텔급 객실에 수영장·공연장 갖춰
동서양 잇는 페낭섬이 첫번째 기항지
랑카위에선 열대우림·해변 여행 동시에
크루즈 하면 지중해나 북유럽의 어느 항구에서 떠나는 여행이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말레이시아를 다녀오는 크루즈선을 타보기 전까지는. 그저 배에 올랐을 뿐인데 기항지 여행은 물론 수영장에서 쉼, 레스토랑에서 만찬, 밤늦도록 이어지는 화려한 공연까지 황홀한 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크루즈 여행의 묘미를 배우고 힐링을 얻었다.
망망대해 위의 파라다이스
싱가포르의 남쪽 항구,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11만6000t급의 거대한 배가 그림처럼 떠 있다. 곧 말레이시아를 향해 항해할 사파이어 프린세스호다. 무려 축구장 3개가 들어갈 만한 넓이에 20층 건물 높이를 능가하는 방대한 규모다. 마치 도시를 배 안에 꽉 채운 듯 승객이 편히 쉴 수는 호텔급 객실, 다양한 레스토랑과 수영장, 카지노와 공연장 등을 갖추고 있는 까닭이다. 고개를 꺾고 올려다봐야 할 만큼 높은 배에 오르자마자 갑판으로 향했다. 갑판 위는 수영장 옆에서 스파클링 와인이나 맥주을 홀짝이는 이들로 붐볐다. 바야흐로 크루즈 여행의 서막을 축하하는 의식이랄까. 덩달아 모히토 한 잔을 들이켜고 수영장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야외 풀에서 물놀이를 즐기다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는 자쿠지에 몸을 담그자 일상에서 쌓였던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그러곤 ‘저녁 식사는 어디서 할까’ 행복한 고민에 잠시 빠졌다. 프린세스 크루즈엔 스테이크 하우스, 뷔페식 인터내셔널 다이닝 바, 이탈리안 트라토리아 등에서 매일 다른 정찬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유료 레스토랑을 제외한 모든 레스토랑이 무료다. 각 메뉴에 어울리는 와인 리스트나 식사를 달콤하게 마무리해주는 디저트 메뉴도 각별하다.
저녁 식사 후 자석에 끌리듯 향한 곳은 페스티벌 대극장이다. 그곳에서 열리는 뮤지컬 쇼는 한순간도 눈을 떼기 힘들 만큼 화려했다.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를 작곡한 스티븐 슈워츠가 연출한 뮤지컬이다. 뮤지컬은 공연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어느새 불을 밝힌 갑판은 형형이 빛나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 사이 오직 크루즈선만 존재하는 듯한 불빛이었다.
어느새 수영장은 오픈 시네마로 변신해 있었다. 사람들은 소파베드로 둔갑한 선베드에 누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즐겼다. 밤하늘엔 별이 총총했고, 사람들의 손에는 무료로 제공하는 팝콘이나 피자가 들려 있었다. 한적한 갑판과 달리, 배 안은 환한 불빛과 곳곳에서 연주하는 밴드 공연부터 댄스 공연까지 라이브 음악과 파티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그렇게 잠들기 아까운 크루즈의 첫 밤이 깊어갔다.
세월도 비켜간 조화의 거리 페낭
“좋은 아침이에요. 어제 주문한 조식을 가지고 왔어요!” 자고 일어나보니 말레이시아 페낭(Penang)섬의 항구였다. 발코니에 앉아 항구를 바라보며 모닝커피를 홀짝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 방문 앞에 조식 신청 용지를 걸어뒀더니 정확한 시간에 배달을 온 것이다. 이 역시 무료 서비스다. 그 덕에 일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집 앞 나서듯 페낭 항구에 발을 내디뎠다. 첫 기항지 페낭은 수백 년 전부터 동서양을 잇는 무역항으로 번성한 곳으로 역사가 깊다. 영국, 포르투갈, 네델란드 등 서양의 외침을 받았고, 중국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하여 페낭에선 영국과 말레이시아, 중국과 인도 등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어우러진다.
페낭을 가장 오래 점령한 나라는 영국이다. 그 흔적은 항구 가까이에 남아 있는 빅토리아 시계탑, 콘월리스 요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영국은 1786년부터 무려 200년간 페낭을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삼고 조지타운을 조성했다. 조지 3세의 이름에서 따온 조지타운에는 그 시절에 지은 콜로니얼 양식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월이 비켜간 듯한 식민지 양식 건물에는 제각기 다른 언어로 쓰인 간판이 걸려 있고, 담벼락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건물들 사이에 둥지를 튼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사원의 풍경이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다른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조지타운은 별명도 ‘조화의 거리(Street of Harmony)’다.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조지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벽화는 조지타운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어느새 벽화는 여행자들이 조지타운을 찾는 이유가 됐다. 골목 어귀마다 자리잡은 벽화는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벽화 옆에서 장난스러운 자세를 취하곤 한다. 그날도 핀란드에서 온 금발 머리 두 소녀는 미소 띤 얼굴로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화교 많아 중국 문화 흔적 곳곳에
페낭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화교가 많이 거주하는 주(州)기도 하다. 그래서 ‘페라나칸’ 문화가 발달했다. 페라나칸이란 중국인 남성과 말레이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데, 남자는 바바(Baba), 여자는 노냐(Nonya)라 부른다. 18세기 말레이반도 주석광산에 일하러 온 중국인 남자들이 말레이시아 여자와 결혼하며 페라나칸이 늘어났다. 이 페라나칸 문화가 얼마나 번성했는지 보여주는 곳이 ‘페낭 페라나칸 멘션’이다. 무역상으로 성공을 이룬 부호가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중정이 있는 집을 집고, ㅁ자 모양 집을 빙 두른 방마다 유럽과 중국에서 공수해온 화려한 가구로 채웠다. 겉에서 보면 민트색 외관이 도드라져 ‘그린 맨션’이라고도 불린다. 거실, 침실 등 고풍스러운 방에 들어설 때마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은 덤이다. 당시 사용했던 각종 그릇과 화려한 장신구 등도 볼거리다.
페낭에는 화교가 많아 중국 사원도 200여 개에 이른다. 그중 페낭에서 가장 번성한 쿠씨 가문에서 만든 사원이 쿠 콩시(Khoo kongsi)다. 1983년 건립을 시작해 15년간 정성 들여 지었다. 완공했을 때는 황제의 궁에 비할 만큼 화려했다고. 1901년 화재로 일부가 소실되긴 했지만, 사원 안쪽의 18개 조각상과 화려한 지붕 조각에서 쿠씨 가문의 품격과 위엄을 엿볼 수 있다.
두 발로 둘러본 항구 도시 페낭의 전망을 한눈에 담고 싶어 시내 중심이 우뚝 선 ‘콤타 타워’로 향했다. 높이 50m 콤타 타워 전망대에서 360도로 페낭을 내려다보기 위해서였다. 과연 전망대에서 감상하는 탁 트인 전망은 시원스러웠다. 저 멀리 내가 타고 온 프린세스 사파이어호가 장난감 배처럼 작게 보였다. 여기에 발아래가 유리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스카이워크 위를 걷는 아찔함이라니. 전망 좋은 바에 앉아 칵테일을 한 모금 한 뒤에야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시원한 모히토는 한나절 페낭 여행에 마침표를 산뜻하게 찍어주는 맛이었다.
비밀스러운 중독, 랑카위의 별명은 사랑?
다음날 아침은 랑카위에서 맞이했다. 페낭이 다채로운 문화로 이뤄진 섬이라면 랑카위는 자연이 풍경의 조각을 이루는 섬이다. “랑카위는 99개 섬으로 이뤄진 군도입니다. 게다가 전체 면적의 65%가 열대 우림이란 것 아세요? 랑카위에선 밀림과 해변을 넘나드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요. 일단 맛친창산 위에 올라 보시죠. 직접 가보면 공기가 얼마나 맑은지, 때 묻지 않은 원시림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느끼게 될 거예요.” 섬 북서쪽 맛친창(Mat Chinchang)산에 자리한 오리엔탈 빌리지로 가는 길, 가이드의 랑카위 자랑이 끝없이 이어졌다. 오리엔탈 빌리지는 말레이시아 전통 가옥으로 이뤄진 테마파크다. 그 안에는 세그웨이, ATV, 3차원(3D) 아트뮤지엄 등 다양한 체험 거리와 기념품 가게 등이 옹기종기 자리해 있다. 랑카위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방향을 튼 이유는 따로 있다. 맛친창산을 따라 해발 709m 정상까지 올라가는 6인용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다.
케이블카에 오르자 발아래로 랑카위의 푸른 열대 우림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였다. 중간에는 경사가 42도까지 기울어지는 구간이 있어 심장이 더욱 쫄깃해졌다. 20분 남짓 케이블카를 탔을까. 케이블카는 해발 650m 지점에 정차했다가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전망대에 서자 랑카위를 이루는 100여 개의 섬이 점점이 떠 있는 풍광이 펼쳐졌다. 화창한 날엔 멀리 태국의 섬까지 조망할 수 있단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은 맛친창산의 두 봉우리를 잇는 스카이 브리지를 건널 차례. 스카이 브리지는 총길이 125m의 세계에서 가장 긴 곡선형 현수교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하늘 위를 걷는 듯했다. 게다가 다리에는 총 3개의 유리 패널이 부착돼 있어 그 아래로 계곡이 훤히 보였다. 그야말로 아찔함의 절정이었다.
랑카위의 산을 즐겼으니 이번엔 바다를 즐길 차례다. 버스에서 배로 갈아타고 남 어드벤처 파라다이스101섬에 당도했다. 남 어드벤처는 작은 섬을 통째로 쓰고 있는 리조트 겸 레저 랜드로 휴식과 수상 레포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곳이다. 수상 레포츠도 식후경. 점심 식사 후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다색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겼다. 가만히 누워 빛과 물색의 변화를 감지하며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막상 집라인과 제트 스키 등 각종 레포츠를 즐기고 나니 더 행복했다.
크루즈선으로 돌아오는 길, 가이드가 말했다. “랑카위의 별명은 사랑(Sa-Lang)입니다. 영어로 ‘비밀스러운 중독, 랑카위(Secret Addiction, Langkawi)’의 줄임말이죠.” 랑카위의 별명이 한글로 사랑과 같은 발음이라니. 어쩐지 설렜다. 앞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할 때 마다 랑카위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싱가포르=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망망대해 위의 파라다이스
싱가포르의 남쪽 항구,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11만6000t급의 거대한 배가 그림처럼 떠 있다. 곧 말레이시아를 향해 항해할 사파이어 프린세스호다. 무려 축구장 3개가 들어갈 만한 넓이에 20층 건물 높이를 능가하는 방대한 규모다. 마치 도시를 배 안에 꽉 채운 듯 승객이 편히 쉴 수는 호텔급 객실, 다양한 레스토랑과 수영장, 카지노와 공연장 등을 갖추고 있는 까닭이다. 고개를 꺾고 올려다봐야 할 만큼 높은 배에 오르자마자 갑판으로 향했다. 갑판 위는 수영장 옆에서 스파클링 와인이나 맥주을 홀짝이는 이들로 붐볐다. 바야흐로 크루즈 여행의 서막을 축하하는 의식이랄까. 덩달아 모히토 한 잔을 들이켜고 수영장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야외 풀에서 물놀이를 즐기다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는 자쿠지에 몸을 담그자 일상에서 쌓였던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그러곤 ‘저녁 식사는 어디서 할까’ 행복한 고민에 잠시 빠졌다. 프린세스 크루즈엔 스테이크 하우스, 뷔페식 인터내셔널 다이닝 바, 이탈리안 트라토리아 등에서 매일 다른 정찬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유료 레스토랑을 제외한 모든 레스토랑이 무료다. 각 메뉴에 어울리는 와인 리스트나 식사를 달콤하게 마무리해주는 디저트 메뉴도 각별하다.
저녁 식사 후 자석에 끌리듯 향한 곳은 페스티벌 대극장이다. 그곳에서 열리는 뮤지컬 쇼는 한순간도 눈을 떼기 힘들 만큼 화려했다.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를 작곡한 스티븐 슈워츠가 연출한 뮤지컬이다. 뮤지컬은 공연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어느새 불을 밝힌 갑판은 형형이 빛나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 사이 오직 크루즈선만 존재하는 듯한 불빛이었다.
어느새 수영장은 오픈 시네마로 변신해 있었다. 사람들은 소파베드로 둔갑한 선베드에 누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즐겼다. 밤하늘엔 별이 총총했고, 사람들의 손에는 무료로 제공하는 팝콘이나 피자가 들려 있었다. 한적한 갑판과 달리, 배 안은 환한 불빛과 곳곳에서 연주하는 밴드 공연부터 댄스 공연까지 라이브 음악과 파티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그렇게 잠들기 아까운 크루즈의 첫 밤이 깊어갔다.
세월도 비켜간 조화의 거리 페낭
“좋은 아침이에요. 어제 주문한 조식을 가지고 왔어요!” 자고 일어나보니 말레이시아 페낭(Penang)섬의 항구였다. 발코니에 앉아 항구를 바라보며 모닝커피를 홀짝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 방문 앞에 조식 신청 용지를 걸어뒀더니 정확한 시간에 배달을 온 것이다. 이 역시 무료 서비스다. 그 덕에 일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집 앞 나서듯 페낭 항구에 발을 내디뎠다. 첫 기항지 페낭은 수백 년 전부터 동서양을 잇는 무역항으로 번성한 곳으로 역사가 깊다. 영국, 포르투갈, 네델란드 등 서양의 외침을 받았고, 중국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하여 페낭에선 영국과 말레이시아, 중국과 인도 등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어우러진다.
페낭을 가장 오래 점령한 나라는 영국이다. 그 흔적은 항구 가까이에 남아 있는 빅토리아 시계탑, 콘월리스 요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영국은 1786년부터 무려 200년간 페낭을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삼고 조지타운을 조성했다. 조지 3세의 이름에서 따온 조지타운에는 그 시절에 지은 콜로니얼 양식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월이 비켜간 듯한 식민지 양식 건물에는 제각기 다른 언어로 쓰인 간판이 걸려 있고, 담벼락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건물들 사이에 둥지를 튼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사원의 풍경이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다른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조지타운은 별명도 ‘조화의 거리(Street of Harmony)’다.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조지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벽화는 조지타운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어느새 벽화는 여행자들이 조지타운을 찾는 이유가 됐다. 골목 어귀마다 자리잡은 벽화는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벽화 옆에서 장난스러운 자세를 취하곤 한다. 그날도 핀란드에서 온 금발 머리 두 소녀는 미소 띤 얼굴로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화교 많아 중국 문화 흔적 곳곳에
페낭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화교가 많이 거주하는 주(州)기도 하다. 그래서 ‘페라나칸’ 문화가 발달했다. 페라나칸이란 중국인 남성과 말레이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데, 남자는 바바(Baba), 여자는 노냐(Nonya)라 부른다. 18세기 말레이반도 주석광산에 일하러 온 중국인 남자들이 말레이시아 여자와 결혼하며 페라나칸이 늘어났다. 이 페라나칸 문화가 얼마나 번성했는지 보여주는 곳이 ‘페낭 페라나칸 멘션’이다. 무역상으로 성공을 이룬 부호가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중정이 있는 집을 집고, ㅁ자 모양 집을 빙 두른 방마다 유럽과 중국에서 공수해온 화려한 가구로 채웠다. 겉에서 보면 민트색 외관이 도드라져 ‘그린 맨션’이라고도 불린다. 거실, 침실 등 고풍스러운 방에 들어설 때마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은 덤이다. 당시 사용했던 각종 그릇과 화려한 장신구 등도 볼거리다.
페낭에는 화교가 많아 중국 사원도 200여 개에 이른다. 그중 페낭에서 가장 번성한 쿠씨 가문에서 만든 사원이 쿠 콩시(Khoo kongsi)다. 1983년 건립을 시작해 15년간 정성 들여 지었다. 완공했을 때는 황제의 궁에 비할 만큼 화려했다고. 1901년 화재로 일부가 소실되긴 했지만, 사원 안쪽의 18개 조각상과 화려한 지붕 조각에서 쿠씨 가문의 품격과 위엄을 엿볼 수 있다.
두 발로 둘러본 항구 도시 페낭의 전망을 한눈에 담고 싶어 시내 중심이 우뚝 선 ‘콤타 타워’로 향했다. 높이 50m 콤타 타워 전망대에서 360도로 페낭을 내려다보기 위해서였다. 과연 전망대에서 감상하는 탁 트인 전망은 시원스러웠다. 저 멀리 내가 타고 온 프린세스 사파이어호가 장난감 배처럼 작게 보였다. 여기에 발아래가 유리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스카이워크 위를 걷는 아찔함이라니. 전망 좋은 바에 앉아 칵테일을 한 모금 한 뒤에야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시원한 모히토는 한나절 페낭 여행에 마침표를 산뜻하게 찍어주는 맛이었다.
비밀스러운 중독, 랑카위의 별명은 사랑?
다음날 아침은 랑카위에서 맞이했다. 페낭이 다채로운 문화로 이뤄진 섬이라면 랑카위는 자연이 풍경의 조각을 이루는 섬이다. “랑카위는 99개 섬으로 이뤄진 군도입니다. 게다가 전체 면적의 65%가 열대 우림이란 것 아세요? 랑카위에선 밀림과 해변을 넘나드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요. 일단 맛친창산 위에 올라 보시죠. 직접 가보면 공기가 얼마나 맑은지, 때 묻지 않은 원시림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느끼게 될 거예요.” 섬 북서쪽 맛친창(Mat Chinchang)산에 자리한 오리엔탈 빌리지로 가는 길, 가이드의 랑카위 자랑이 끝없이 이어졌다. 오리엔탈 빌리지는 말레이시아 전통 가옥으로 이뤄진 테마파크다. 그 안에는 세그웨이, ATV, 3차원(3D) 아트뮤지엄 등 다양한 체험 거리와 기념품 가게 등이 옹기종기 자리해 있다. 랑카위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방향을 튼 이유는 따로 있다. 맛친창산을 따라 해발 709m 정상까지 올라가는 6인용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다.
케이블카에 오르자 발아래로 랑카위의 푸른 열대 우림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였다. 중간에는 경사가 42도까지 기울어지는 구간이 있어 심장이 더욱 쫄깃해졌다. 20분 남짓 케이블카를 탔을까. 케이블카는 해발 650m 지점에 정차했다가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전망대에 서자 랑카위를 이루는 100여 개의 섬이 점점이 떠 있는 풍광이 펼쳐졌다. 화창한 날엔 멀리 태국의 섬까지 조망할 수 있단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은 맛친창산의 두 봉우리를 잇는 스카이 브리지를 건널 차례. 스카이 브리지는 총길이 125m의 세계에서 가장 긴 곡선형 현수교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하늘 위를 걷는 듯했다. 게다가 다리에는 총 3개의 유리 패널이 부착돼 있어 그 아래로 계곡이 훤히 보였다. 그야말로 아찔함의 절정이었다.
랑카위의 산을 즐겼으니 이번엔 바다를 즐길 차례다. 버스에서 배로 갈아타고 남 어드벤처 파라다이스101섬에 당도했다. 남 어드벤처는 작은 섬을 통째로 쓰고 있는 리조트 겸 레저 랜드로 휴식과 수상 레포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곳이다. 수상 레포츠도 식후경. 점심 식사 후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다색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겼다. 가만히 누워 빛과 물색의 변화를 감지하며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막상 집라인과 제트 스키 등 각종 레포츠를 즐기고 나니 더 행복했다.
크루즈선으로 돌아오는 길, 가이드가 말했다. “랑카위의 별명은 사랑(Sa-Lang)입니다. 영어로 ‘비밀스러운 중독, 랑카위(Secret Addiction, Langkawi)’의 줄임말이죠.” 랑카위의 별명이 한글로 사랑과 같은 발음이라니. 어쩐지 설렜다. 앞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할 때 마다 랑카위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싱가포르=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