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하르츠 개혁과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은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노동시장 개혁으로 경제를 백척간두 위기에서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동차, 전자 등 핵심 산업이 위기에 봉착한 게 계기가 됐다. ‘풍전등화’와 같은 한국의 요즘 경제·산업 상황은 그때의 독일, 네덜란드와 다를 바 없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노동귀족’ 소리를 들은 지 오래임에도 끝없이 ‘쟁취’ 타령을 해온 자동차회사 노조들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진실의 순간’이 온 것이 아닐까.

독일과 네덜란드의 강성 노조들이 노·사·정 대타협을 결단했던 것은 기업이 살아남아야 일자리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통감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자동차 노조의 행태를 보면 갑갑하기만 하다. 미국 일본 독일 자동차업체들이 6~8%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내는 와중에 현대자동차 1%대, 기아자동차는 0%대로 추락했고 쌍용자동차와 한국GM은 적자 늪을 헤매는데 노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협력사들이 줄도산하면서 자동차산업 생태계 붕괴 우려가 커지는 판국에, 노조는 기득권을 더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회사와의 관계를 강자와 약자, 착취와 수탈 따위의 철 지난 대립구도로만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장 배치, 생산물량 조절까지 가부(可否) 결정권을 거머쥔 노조들은 그에 맞춰 경영 결과에 상응하는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다. 물론 자동차산업이 위기를 맞은 것을 노조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뚜렷한 미래 비전을 갖고 신기술과 새로운 혁신을 이뤄내지 못한 경영진 책임도 크다.

이제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노조도 회사도 이대로 가다간 공멸한다는 위기감을 갖고 지혜와 역량을 모으는 일이 절실하다. 자동차산업의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끊어내지 못하면 파국을 피할 수 없다. 노조는 남들이 다 절감하는 위기를 외면하며 철부지 같은 타도, 쟁취, 투쟁 따위 구호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회사는 자동차의 미래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정부도 노동개혁과 신기술 규제혁신을 통해 자동차산업 경쟁력 회복을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