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오르나.’

산을 잘 가지 않은 사람들은 이 질문을 많이 한다. 굳이 내려올 산을 왜 힘들여 올라가는가. 답은 없다. 다만 인생의 여정이 결승점을 향해 가는 경주가 아니듯, 산을 오르는 것도 정상을 찍는 것만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BAC) 멤버들이 참여하고 있는 ‘명산 100’ 프로그램 역시 단순히 산 정상을 찍는 활동이 아니다. 100개 명산을 오르며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게 이들이 산을 타는 이유다.

◆BAC 멤버 7만7000명 달해

       .
.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은 산행에 대한 지식과 활동을 공유하는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이다. 휴대폰으로 BAC 앱(응용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전국 100대 명산의 정보가 우선 앱에 있다. 산에 버려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클린 산행, 탐방 기록과 차량 나눔 등도 이곳에서 공유된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기는 방식과 문화를 제안한다.

블랙야크 익스트림팀과 셰르파들이 전국 각 지역 탐방이 가능한 명산을 선정했다. ‘명산 100’은 인증 용품과 함께 찍은 정상 사진을 올리면 전국의 셰르파가 심사 후 인증을 해주는 방식이다. 가장 정확한 자신만의 등산 기록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이 명산을 즐겁게 다녀올 수 있도록 셰르파들이 지역별 이벤트, 정기 산행, 이벤트 산행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BAC 앱을 통해 신청을 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 멤버에게 등산은 끝없이 오르고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과정에서 자연을 느끼고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서로 모르고 관계가 없었던 사람들이 함께 뭉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매일, 매주 가야 하는 부담도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 대한 정보를 얻고 취향과 관심사를 공유한 사람과 만날 수도 있다.

현재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은 7만7000여 명에 이른다. 올 10월 기준 90만 개가 넘는 산행 인증을 남겼다.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다음달 중순 블랙야크는 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은 ‘명산 100과 사람들’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인생의 방향 찾게 한 산

책 ‘명산 100과 사람들’에 담긴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 멤버들의 사연은 하나하나 소중하다.

방황했던 어린 시절 우연히 본 산악부원 모집 포스터를 통해 산과 처음 인연을 맺은 이다연 씨(28). 오르는 봉우리가 많아질수록 삶에 자신감이 생겼다.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즐기는 법을 산에서 배웠다. 방황하는 청춘이 아닌 ‘나는 할 수 있다’는 인생의 방향을 찾았다고 한다.

임재창 씨(62) 딸들은 부친이 산을 하나씩 오르고 정상에서 찍은 인증 사진을 가족 카톡방에 올리면 그 산 이름으로 5만원씩 계좌에 입금한다. 술과 친했던 부친은 산을 접하고 건강해졌다. 아버지의 새로운 결심을 딸들이 응원하고 있다. 임씨는 명산100 완주 후 히말라야 트레킹 계획도 세워놨다.

예고 없이 닥쳐온 뇌졸중 수술로 후유증을 안고 관악산을 이를 악물고 올랐던 이정수 씨(66) 사연도 있다. 첫 산과의 인연을 계기로 명산 도전에 참가했지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온 그를 본 주위의 시선은 따가웠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의 의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했다. 적극적으로 그를 도와주는 참가자도 여럿 생겼다. 산을 가지 않으면 이제 몸이 아프다는 이씨는 2014년 ‘오은선 대장과 함께하는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참가해 해발 4130m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이외에도 두 자녀와 함께 100대 명산을 모두 완주한 참가자, 어머니의 간 공여를 위해 체력을 기르고자 산을 탄 참가자, 한국의 명산을 오르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외국인 참가자, 등산의 매력에 빠져 명산 100을 완주하다 블랙야크에 입사한 참가자 등의 사연도 있다.

블랙야크 측은 산 이야기가 감동을 주고 그래서 이들의 사연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산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얘기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