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요건을 갖추지 않은 의료생협 명의로 인가받은 '사무장 병원'을 장기간 운영하며 1천억원이 넘는 요양급여를 빼돌린 운영자의 구속영장이 기각돼 뒷말이 나온다.

부산경찰청은 29일 불법 의료생협을 설립해 '사무장 병원'을 운영하며 요양급여 1천352억원을 빼돌린 의료생협 대표 4명을 적발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대표 4명 중 구속자는 부친이 대표로 있던 의료법인을 형식적으로 승계한 뒤 사무장 병원을 9년간 운영해 요양급여 270억원 상당을 빼돌린 B(41)씨가 유일했다.

특히 A(68)씨는 범행 기간, 수법, 사기 규모에서 다른 대표들의 범행을 압도했지만 구속되지 않았다.

A씨는 설립 요건을 갖추지 않은 의료생협을 만든 뒤 사무장 병원을 개설한 점에서 다른 대표들과 유사했다.

하지만 11년 8개월에 걸쳐 요양급여 1천10억원을 빼돌린 점, 개인 횡령금액이 10억원에 이르는 점 등 지금껏 적발된 사무장 병원 중 최대 규모에 속했다.

병원 3개를 동시에 개설해 운영한 점, 병원 설립이 용이하도록 인가받은 의료생협을 의료법인으로 바꾼 점 등은 눈길을 끌었다.

더군다나 A씨는 30대 후반 자녀 2명에게 병원 직책을 주고 거의 출근하지 않는데도 매달 500만∼600만원씩 5년여간 모두 7억원 넘는 급여를 지급했고 법인 명의로 산 9천만원짜리 아우디 차량을 명의 이전해주기도 했다.

또 고액·중증 질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려는 목적으로 시행된 본인 부담 상한액 제도를 악용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과다한 요양급여를 청구해 받은 사실도 적발되는 등 구속된 B씨보다 중대 혐의를 입증할 자료가 더 많았다.

이 때문에 A씨 범행은 지난달 21일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불법 사무장 병원 범죄의 집약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경찰은 수사 초기 A씨에 대한 체포 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고, 이후 두 번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한 번은 검사가 수사 보강 차원에서 기각했고 지난달 21일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 때는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A씨 주거가 일정하고 초범"이라는 취지로 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사무장 병원 수사가 한창이었던 2016년에 비해 피의자 구속 사례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맞지만 다른 피의자에 비해 범행 규모가 크고 죄질이 나쁜 A씨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의아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A씨가 경찰청장 출신 변호사를 수임한 것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경찰은 최근 A씨에 대한 세 번째 구속영장을 신청해 30일 오후 부산지법에서 두 번째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릴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