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은 국정원 직무 아니므로 직권남용 성립 안 돼" 주장
'사찰공작' MB국정원 간부, 2심서 "직권남용 다시 살펴달라"
이명박 정부 시절 정치인과 민간인의 개인 컴퓨터 등을 해킹해 불법 사찰을 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전직 국가정보원 간부가 2심에서 혐의가 범죄로 성립하는지를 다시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전 국정원 방첩국장 김모씨의 변호인은 30일 서울고법 형사2부(차문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의 첫 공판에서 "직권남용의 성립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외형상 자신의 업무 범위 내에 속하는 일에 대해 다른 의도로 지시할 때 직권남용이 성립하는데, 민간인 사찰은 국정원법상 직무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며 "형사상의 일반적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직권남용은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의 소송 지원과 차명재산 상속세 절감 방안 검토를 공무원들에게 지시한 혐의를 두고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것과 흡사한 논리로 여겨진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 행위가 될 수는 있으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임 시절인 2011년을 전후해 대북 관련 공작을 수행하는 방첩국 산하에 '포청천'이라는 이름으로 공작팀을 꾸리고 야권 및 진보인사 등을 상대로 한 불법사찰을 벌이도록 주도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검찰은 포청천 팀이 사찰 대상자들을 미행했을 뿐 아니라 악성 코드로 PC를 해킹해 이메일 자료 등을 빼내는 방식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것으로 파악했다.

국정원의 PC 해킹을 당한 대상에는 배우 문성근씨를 비롯해 봉은사 전 주지인 명진 스님 등이 포함됐고,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 등 당시 여권 인사까지도 사찰대상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 측은 1심에서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으나, 항소심에서는 법리적으로 유·무죄를 다투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은 국정원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공모해 벌인 사찰 행위인데, 어떤 의미에서 그들 전체가 공범이라고 생각하는지 불명확하다"며 "지시를 받는 사람이 따랐을 때 직권남용이 성립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변호인의 주장은 이미 1심에서 충분히 심리되고 적절히 판단됐다"고 반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