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특허, 조인흠 변리사
노벨 특허, 조인흠 변리사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일자리 문제”이다. 취업시장이 어려워짐에 따라 등장한 “N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시사상식사전에 올라와있는걸 보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 문제로 마음고생하고 있을지 새삼 걱정스럽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훨씬 많은 고용을 창출한다. 중소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유명한 독일의 전체 실업률은 3.6%로 완전취업에 가깝다.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성공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애플은 스티브 워즈니악의 차고에서 시작했고,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의 대학 기숙사에서 시작됐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성공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그 중에서도 기술유출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기술력 하나로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중소기업에게 기술유출 문제는 기업의 존속을 좌우할 만큼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기술유출은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퇴사자를 통한 유출, 협력 업체를 통한 유출, 공동 연구자에 의한 유출 등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상황에서 기술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탈취는 기술유출이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입장에서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해서 갖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서 중소기업으로 부터 제공받은 기술 자료를 자신의 기술로 유용하는 기술 탈취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은 굳이 여러 통계 자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의 거래 관계에서 월등한 협상력을 갖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서면 계약 없이도 대기업에 기술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가지고 있는 기술로 영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유 기술을 여러 자리에서 시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중소기업은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할까? 특허법, 부정경쟁방지법, 하도급법 등 관련법령은 많고, 각종 방안이 쏟아지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그리고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판단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우선 최근 이슈 되는 것 중 하나가 부정경쟁방지법의 개정이다. 2018. 4. 17. 개정으로 2018. 7. 18. 시행 예정인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는 제2조 제1호 차목을 신설(종래 차목은 카목으로 변경)한다. 신설된 제2조 제1호 차목은 제안, 입찰 등에서 제공된 아이디어가 영업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해당 아이디어를 제공 목적에 반하여 부정하게 사용하면 부정경쟁행위에 포함된다는 취지를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종래에도 이러한 경우를 부정경쟁행위로 볼 수 있는 규정은 있었다. 예를 들면, 현재 시행 중인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카목에서는 “그 밖에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명시하여 경쟁질서에 반하는 무단 사용을 부정경쟁행위로 볼 수 있다는 일반 규정을 두고 있다. 즉 신설규정이 부정경쟁행위의 일 태양을 보다 명확히 한 것은 사실이나, 아직 본 규정에 대한 판례가 쌓인 것도 아니고, 종래 일반 규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어서, 본 규정만으로 중소기업의 기술이 확실히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많은 종류의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추후에 중소기업이 기술 탈취를 주장해도 신설 조항의 단서 규정에 따라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기술이라고 주장하며 법적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법 개정은 매우 바람직하나, 본 개정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예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기술 보호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비밀유지약정서(non disclosure agreement)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질적으로 비밀유지약정서를 작성해둘 수 있다면 법적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중요한 입증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하면 꼭 작성해둘 필요가 있다.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무조건 증거싸움이 된다는 점에서, 필자는 가능하면 꼭 비밀유지약정서를 받아둘 것을 권한다.

다만, 우월적 지위를 갖는 대기업에게 중소기업이 비밀유지약정서를 요구하는 것이 업계 관행상 쉽지만은 않다. 또한, 설령 비밀유지약정서를 작성한다 하더라도 대기업 측에서 비밀유지약정서에 단서로 꼭 추가하는 내용이 있다. 여러 내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기존에 대기업에서 알고 있던 기술이라면 비밀유지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즉,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많은 종류의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추후에 본 계약이 문제가 될 때 다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기업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충분한 정보, 충분한 인력,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대기업이다.

그럼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려운 문제일수록 기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듯이, 그 답은 바로 “특허”다. 하지만 특허로 핵심 기술을 제대로 보호받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특허다. 특허 출원을 하나 했다고 해서 그 기술이 온전히 보호받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래서 특허가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핵심 기술을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우선 특허로 보호받을지 영업비밀로 보호받을지를 판단해야한다. 해당 기술을 공개하지 않고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영업비밀로 보호받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다만, 어떤 식으로라도 해당 기술이 공개되었을 때 권리를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위험 요소가 있다. 영업비밀 원본증명서비스 등의 방법을 이용할 수 있으나, 특허처럼 강력하게 보호받기는 어렵다. 따라서 공개되는 것을 피할 수 없거나, 공개해도 상관없다면 특허로 보호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핵심 기술을 특허로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펜딩 중인 출원을 유지하면서 분할출원의 등록으로 타게팅된 권리 범위를 확보하는 것이 필자가 말하고 싶은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특허는 등록되면 권리범위가 사실상 확정된다. 하지만 펜딩 중인 출원은 어떻게 권리범위가 확정될지 불확실하다. 따라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우선 출원하여 출원일을 확보하고, 여러 분할출원으로 등록받되, 적어도 하나는 펜딩 상태를 유지하여 원하는 권리범위를 변경하여 확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부는 등록받아 권리를 행사하고, 침해주장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원하는 기술적 특징을 타게팅하여 재차 등록을 도모할 수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특허 전략은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이용하는 특허 전략이다. 이와 같은 방식을 이용해야 실제로 권리범위가 확보되는 강한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용이하다. 하나의 아이디어라고 해서 하나의 등록 특허만을 가지고 있을 경우, 예상하지 못한 회피 설계나 무효 주장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도 대기업 특허팀에서는 경쟁 업체에서 해당 발명에 대해 펜딩 중인 출원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를 까다롭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중에 어떤 권리범위로 등록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쟁이 예상되는 발명에 대해서는 10건 이상의 무더기 분할출원을 진행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또한 해외출원도 적극적으로 시도하여 해외에서 권리범위를 확보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특히 국제출원을 이용할 경우, 2년 반 정도의 시간을 두고 해외에 진입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 상황을 지켜본 후 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미국 등으로 수출을 하기 때문에 미국처럼 특허 침해에 대한 손해 배상액이 높은 국가에서 등록을 받을 경우, 강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기술 분야에 따라서 베트남과 같이 생산 시설이 집중된 국가에서 권리화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침해금지청구가 받아들여진다면 물건을 생산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권리범위가 확보되는 강한 특허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 효과는 탁월하다. 침해가 긍정될 수 있다면 침해금지청구(특허법 제126조), 손해배상청구(특허법 제128조), 심지어 침해죄(특허법 제225조)를 근거로 한 형사고소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 모든 강력한 조치는 “실질적으로 권리범위가 확보되는 강한 특허”가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대기업들은 특허 분쟁에 대처하기 위해 이러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치밀하게 관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중요 출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분할출원을 하면서 타게팅을 시도한다. 하지만 정작 그런 방안을 중소기업에서는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런 실무적 방안을 잘 모르는 까닭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은 권리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공개의 대가로 독점권을 부여하는 특허법이 있다. 우리나라에 특허 제도가 존재하는 한, 특허가 있어야 비로소 기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특허야말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대기업을 상대로 중소기업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필자가 처음 중소기업의 기술유출에 대한 칼럼을 요청받았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실무를 경험해본 입장에서 완벽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기란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외치는 목소리는 이윤 추구라는 목표 앞에서 쉽게 힘을 잃어버리곤 한다. 심지어 특허가 있어도 실시료를 지급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회피하거나 어떻게든 무효시키려 드는 것이 필자가 보아온 현실이다.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면 그 기술을 제도적으로 보호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제도적으로 보호받는 기술이라면 그 가치를 인정하고 기술 실시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문화가 형성될 때, 비로소 기술 개발의 의욕이 넘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시대가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글= 노벨 특허, 조인흠 변리사
정리= 경규민 한경닷컴 기자 gyu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