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동행한 와중에 북한의 일개 당국자로부터 대놓고 막말을 들었고, 우리 정부는 그런 것을 알고도 덮어뒀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달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기업 총수들은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으로부터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40일이 지난 그제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서야 드러났다. 이선권의 막말 전력이 처음은 아니라지만, 손님을 초대해 놓고 어떻게 이런 무례와 몰상식이 있을 수 있는지 귀를 의심하게 된다.

기업 총수들이 평양에 간 것은 청와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서였다. 북한 측은 자신들이 각별히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 놓고 농담이라도 참기 힘든 말을 80세 고령인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에게 정색하고 내뱉은 것이다. 실질적인 경협 투자 결정권을 가진 총수들에게 빨리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용남 북한 내각 부총리는 당시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게 “여러가지 측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던데…”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봉변도 이런 봉변이 없다. 더 황당한 것은 정부 대응이다. 대북제재 국면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기업인들을 반(半)강제로 데려가 모욕을 겪게 한 것도 문제지만, 사실을 알고도 한 달 넘게 꿀먹은 벙어리였다. 하마터면 그냥 넘어갈 뻔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국감장에서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며 “북측에서는 남북관계가 속도를 냈으면 하는 게 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해명조차 북한 대변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왜 북한에 그토록 저자세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기업들은 나라 안팎의 악재를 맞아 사면초가다. 미·중 무역전쟁, 금리인상에다 노동비용 급증, 주력산업 부진 충격 등이 쓰나미처럼 닥쳐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기업의 역할을 원천 부정하는 반(反)기업정서의 법제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오죽하면 경총 회장단이 지난 29일 이낙연 총리와의 만찬에서 “우리 사회가 기업인들을 죄인 취급하고 있다”고 토로했을까 싶다. 국내에서 홀대받고 북한에서까지 능멸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 기업의 업적을 기리는 공원까지 세워가며 기업인들의 기(氣)를 살려주고 있다. 일본에선 정부가 기업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하고, 미국은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감세와 규제 철폐로 화답한다. 유독 한국의 기업인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되고, 신사업·신기술로 경쟁력을 키우기 전에 규제부터 살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국내에서 기업하는 게 점점 ‘극한직업’이 돼간다. 이제는 북한 당국자들조차 한국의 대표 기업인들을 무례와 막말로 대한다. 대한민국이 참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