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성폭행당했다며 재판을 진행하던 부부가 동반자살한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30대 남성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1·2심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됐다”고 꾸짖으며 결론을 뒤집었다.

대법원 1부는 강간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모씨(38)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대전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박씨는 2014년 4월 충남 계룡의 한 모텔에서 친구의 부인 A씨를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원심은 “유일한 증거인 A씨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모텔 주차장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A씨의 행동이 자연스럽고 강간 직후 박씨와 A씨가 대화를 나눈 사실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이를 근거로 A씨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것은 성폭행 사건을 심리할 때 요구되는 ‘성인지 감수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폭행이 발생하기 전후 피해자의 이른바 ‘피해자답지 못한 행동’을 근거로 진술의 신빙성을 부인해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이 사건은 박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지난 3월 피해자 A씨와 A씨의 남편이 유서를 남기고 함께 목숨을 끊어 세간에 알려졌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