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가정환경 등 기준 제시…"전쟁게임 즐기는지도 살펴봐야" 의견도
판·검사에 '양심감별권' 부여한 셈…일각선 '관심법 수사·재판' 우려
"병역거부자 양심, 검사가 감별가능" vs "관심법인가" 새 논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일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가 무죄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앞으로 병역거부자가 주장하는 '양심의 진정성'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지를 놓고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피고인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할 경우, 그 양심이 과연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 심사해야 한다"며 "피고인이 소명자료를 제시하면 검사는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不)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병역을 거부하는 개개인의 양심을 검사·판사가 평가해서 기소·불기소나 유죄·무죄를 판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 가정환경 ▲ 성장 과정 ▲ 학교생활 ▲ 사회경험 등 삶의 모습 전반을 살펴보는 식으로 인간 내면에 있는 양심을 간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일부 1·2심에서는 피고인의 신념을 확인하기 위해 개종 시기, 세례 여부, 가족들의 종교, 부모 형제의 병역기피 처벌 여부, 종교활동 참석 상황, 종교 관련 사회활동 등을 검증해왔다.

여호와의 증인인 백종건 변호사는 "법원에 학생 생활기록부를 제출하거나 면접을 보듯 재판부에 본인의 신념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진술서를 써내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님·지인을 증인으로 세워 피고인이 평소 어떤 생활을 했으며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등을 묻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병역거부자 양심, 검사가 감별가능" vs "관심법인가" 새 논란
그러나 이 같은 기준을 두고도 피고인이 진정으로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자인지, 종교나 양심의 가면을 쓴 병역기피자인지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로서는 난제를 떠안은 셈이다.

질병 등 명확한 요건이 아닌 사유로 병역을 거부한 경우, 종전까지는 병역거부 사실만으로 기소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수사 대상자가 제출한 자료의 신빙성을 따져 양심을 감별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검찰의 고민은 특정 개인의 사생활이나 성향을 낱낱이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검사는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확인해 '진짜 양심', '가짜 양심'을 구별하라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판례가 쌓이기 전까지 일선에서 굉장한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변호사도 "검찰이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청년들이 많이 하는 '오버워치'처럼 전투에 참여해 총을 쏘는 게임 등을 즐긴 이력 같은 것은 검찰이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여호와의 증인처럼 특정 종교 신자가 아니라 반전주의자 등 독자적인 신념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의 경우, 그 양심의 진정성을 어떻게 가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판결에 반대의견을 낸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도 "진정한 양심의 존재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며 "다수의견이 제시한 사정들은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 발견에 부합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대법원의 판결이 판사·검사에게 내밀한 양심의 영역을 들여다보고 평가할 수 있는 과도한 재량 권한을 부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가의 수사·재판권이 개인 양심의 자유를 재단하는 상황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병역거부자를 '양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정립되기 전까지 '관심법' 같은 수사와 재판이 이어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