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일제 첩자가 된 만주족 공주…전범인가, 권력의 희생양인가
아이신기오로 셴위(1907~1948)는 청나라 왕자 아이신기오로 산치의 열네 번째 딸로 태어났다. 1912년 만주족의 청 왕조가 몰락한 뒤 그의 아버지는 일본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권력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때 같이 힘써준 일본인 친구에게 그를 양딸로 넘겨준다. 이 일본인은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줬다. ‘가와시마 요시코’다. 만주의 공주이자 일본의 스파이로서 격랑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가와시마 요시코》는 여전히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인물의 인생을 사실적이고도 정교하게 묘사한다. 저자는 미국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필리스 번바움이다.

가와시마는 그의 양아버지로부터 이름만 받은 게 아니다. 만주족의 옛 영화를 회복해야 한다는 사명을 끊임없이 주입받았다. 이 사명에 대한 가와시마의 무시무시한 집착은 결국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의 성격은 불같았다. 그리고 남들의 이목을 끄는 걸 좋아했다. 남자 옷을 즐겨 입었으며 사령관으로서의 명성을 뽐냈다. 일본 언론에서 ‘동양의 잔 다르크’라 대서특필해주면 마음껏 즐겼다. 언론은 그를 짧게 깎은 말쑥한 머리에 군복을 즐겨 입는 사령관이라 칭하며, 여러 가지 대담한 위업을 달성했다고 찬양했다. 여기엔 일본의 중국 침략 당시 가와시마가 스스로 군대를 이끌었다는 무용담도 포함됐다. 명성에 중독된 그는 자질이 의심되는 분야에 진출하기도 했다. 몽골 민요라 주장하며 노래를 녹음했는데, 실은 주제를 직접 고르고 가사도 본인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만주족의 부흥을 도모하는 동안 1932년 일본이 건립한 허수아비 국가인 만주국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는 1945년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뒤 가와시마가 처형당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가와시마의 삶에 대한 진실을 두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는 그가 정치 선동가 역할을 즐겼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권력자들 틈에서 이용당한 것이라고 옹호한다. 특히 중국 사람들은 그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악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가와시마가 겪은 심리적, 시대적 사정을 고려해 용서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인다.

이 책은 그의 삶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혼돈 속에 태어나, 격정적인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한 인물의 거친 인생 여정을 긴 호흡으로 따라간다. 저자는 말한다. “언제 어디에서 죽었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여성은 역사에서 금방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삶을 둘러싼 구체적인 내용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시작이 조금만 더 평화로웠더라면 끝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데는 거의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양측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상태로 생을 마감했다.”(필리스 번바움 지음, 이지민 옮김, 사일런스북, 400쪽, 1만6000원)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