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류와 케이팝이 북미, 남미, 유럽까지 진출하며 한국 미디어산업의 새로운 성장 스토리가 시작되고 있다. 한국 경제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방송, 음악 등의 콘텐츠 수출은 고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차세대 국내 산업 성장동력으로서 미디어산업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 콘텐츠산업과 방송산업의 수출액이 올해 각각 8.7%, 11.3%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미디어산업 대표주자인 한류는 단순히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의 표출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출 중심의 국내 산업 구조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글을 통해 검색되는 케이팝, 한국 드라마에 대한 검색 트렌드가 국내 여행수지, 서비스 수입과 높은 연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한류를 통해 성장기를 맞이하고 있는 K뷰티 제품 수출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국내 미디어산업을 단순히 한국 콘텐츠 수출과 케이팝 열풍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미디어와 콘텐츠는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콘텐츠가 내용이라면 미디어는 콘텐츠를 어떤 매체나 방법으로 유통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방송매체라는 미디어를 통해 드라마라는 콘텐츠가 방영되는 것이고, 영화라는 미디어에 멜로, 액션, 스릴러 등의 다양한 콘텐츠가 유통될 뿐이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74@hankyung.com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74@hankyung.com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산업은 최근 몇 년간 헤게모니의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편성과 방영권을 보유하고 있던 국내 지상파 3사가 국내 미디어산업 중추 역할을 해왔으나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주도권이 콘텐츠로 이동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 확대와 넷플릭스를 필두로 성장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Over the top), 유튜브 중심의 1인 미디어와 크리에이터(1인 방송 창작자) 확대로 다중채널네트워크(MCN: Multi Channel Network)가 출현하는 등 미디어산업의 구조적 재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 변화와 이용수단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시청자·소비자의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콘텐츠’의 필요성이다. 국내 미디어산업도 플랫폼 주도에서 콘텐츠 주도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방송 플랫폼의 확대와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으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플랫폼이 시청률과 트래픽을 얻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플랫폼과 콘텐츠(제작자) 관계에서 플랫폼이 우위에 있던 시절에는 콘텐츠가 기획(시놉시스, 출연진 등) 단계에서 방송사의 편성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편성을 받지 못하면 완성된 작품도 실제 방영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당시 플랫폼들은 편성이 완료된 뒤 실제 방송으로 이어지는 기간이 매우 긴박하게 이뤄져,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쪽대본(당일 대본이 완료돼 촬영으로 이어지는 형태)’이 빈번했다.

콘텐츠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나타난 가장 큰 산업 변화는 ‘사전제작’이 미디어산업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물론 반(半)사전제작(일부 사전제작 후, 방영과 함께 추가 촬영 진행)에서 사전제작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국내 콘텐츠 수요가 증가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전제작 확대로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초기 투자비용이 증가했지만 반대로 양질의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플랫폼들이 판권 획득을 목적으로 작품 완성 이전에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 사전제작을 통해 드라마가 방영되면 사후 더 이상 추가적인 이윤을 창출할 수 없는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편의 드라마를 통해 발생하는 다양한 지식재산권(IP)에 한류 요소들을 활용해 수익 모델을 창출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산업 변화 속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국내 영화·드라마 부문의 콘텐츠 제작 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는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넷플릭스 등에 이미 콘텐츠를 제공한 경험을 통해 수준 확인이 가능하다. 특히 넷플릭스는 OTT 분야의 글로벌 기업으로 아시아 부문보다 북미 및 유럽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제작된 드라마가 아시아적 정서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화됐다고 판단한다. 국내 영화도 세계적인 영화제 수상작을 배출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영화 ‘옥자’) 등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이미 확인했다고 생각한다.

sangwoung@eugenef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