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살인사건 CCTV [사진 경남경찰청]
거제 살인사건 CCTV [사진 경남경찰청]
경남 거제에서 20대 남성이 생면부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해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공분을 사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오전 2시30분쯤 박모(20)씨는 거제시 고현동 한 선착장 인근 주차장 길가에서 폐지를 줍던 A(여·58)씨를 때리기 시작했다.

180cm가 넘는 덩치의 박씨가 키 132cm의 A씨의 얼굴을 수십 차례 가격했고 '살려달라'는 애원에도 머리를 중점적으로 때려 숨지게 했다.

이때 우연히 지나다 현장을 목격한 권모 씨는 SNS에 "나쁜 X 잡았는데 상은 못 줄망정 내가 때린 게 잘못이라 하니 어이가 없다"고 상황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권 씨는 "기사에서 나오는 행인이 나다. 당시 현장에서 범인이 폭행·살인 후 목덜미를 잡고 할머님을 끌고 가고 있었다"면서 "피의자가 차를 보더니 가라고 손짓했지만, 경찰과 119에 신고를 하고 차에서 내려 피의자에게 다가갔다.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람을 죽인 범인을 목격했는데 때려서라도 제압하겠다'고 알렸다"고 설명했다.

권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A씨는 얼굴 형체가 아예 없었고 하의는 벗겨진 상태였다. 피의자 신발은 흰색 신발인데 피범벅이었다"며 "피의자 어머니와 누나가 경찰서에 왔는데 '자기 아들이 그랬다는 증거 있냐'고 하는데 기가 차더라"고 덧붙였다.
목격자 SNS
목격자 SNS
권 씨는 "제가 명치를 발로 차서 (피의자를) 넘어뜨린 뒤 잡았다. 인정한다. 때려 눕혀서 경찰 올 때까지 기다렸다"며 20여분 지나서 경찰이 왔다"고 했다.

이는 경찰이 사건 이후 권씨에 대해 피의자 폭행을 문제삼은 데 대한 설명으로 여겨진다.

권 씨는 "'범인을 왜 이리 심하게 때렸냐'는 말이 오갔다. 세상에 이런 나쁜 X을 잡아도 그냥 대충 넘기려는 경찰의 모습에 화가 났다"며 "범인이 우리에게 잡히고도 피해자 폭행을 이어갔다니 그런소리 하지 마라. 내가 때린 것으로 사건을 숨기려 하지 말고 국민들 안심 제대로 시켜라"고 주장했다.

권 씨가 살인사건의 피의자를 현장에서 붙잡고도 폭행으로 처벌받을 뻔한 상황은 박 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일단락됐다.

CCTV로 권 씨의 폭행 장면을 확인한 경찰이 박 씨에게 고소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으나 "다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니 상관하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 씨가 피의자를 제압한 뒤 경찰이 오히려 "범인을 왜 이렇게 때렸냐"고 묻는 장면은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에게 폭력을 행사해 사망에 이르게 한 남성에게 유죄가 확정된 일을 연상시킨다.

2013년 3월 8일 오전 3시쯤 술을 마시고 귀가한 최 씨는 집 거실에서 서랍장을 뒤지던 도둑 김모(당시 55세)씨를 발견한 후 빨래 건조대 및 차고 있던 허리띠 등을 이용해 수 차례 폭행해 김씨를 뇌사 상태에 이르게 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됐다.

의식불명 상태였던 김씨는 같은 해 12월25일 오전4시쯤 강원도 원주시의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폐렴으로 사망했다. 검찰은 그러자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변경해 최씨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최씨는 절도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일관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정 공방 끝에 최 씨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만약 '거제 살인사건'에서 권 씨가 사건현장을 목격하고 피의자 박씨를 잡으려고 폭행을 하다 심각한 부상을 입혔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법알못(법을 잘 알지 못하다) 자문단 조기현 변호사는 "형법 제21조에서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고 밝혔다.

타인을 위한 정당방위도 가능하다는 판례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피해자 측의 폭행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조 변호사는 "사건에 있어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정당방위가 성립되고 그것을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로 인정할 때 상당한 제한이 있다"면서 "일반인들의 법감정과는 달리 법원은 급박한 상태, 사건이 바로 발생하였거나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 때만으로 그 상황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이 정당한 행위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경우일 지라도 법원은 사적이 복수가 허용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사법정책적 태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박씨가 범행에 앞서 휴대전화로 '사람이 죽었을 때' 등을 검색하고, 왜소한 여성을 상대로 같은 부위를 반복 폭행하거나 상태를 지켜보는 CCTV 영상 등으로 미뤄 계획된 살인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박 씨를 상해치사 혐의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살인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하고 전자발찌 부착 명령도 청구할 방침이다.

도움말=법알못 자문단 조기현 중앙헌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