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선글라스 쓰고 다니면 욕먹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북악산 산행 중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기자에게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지난달 문 대통령 유럽 순방 중 임 실장의 ‘선글라스 DMZ(비무장지대) 시찰’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비판한 것을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다. 청와대는 정치 공세로 일축했지만 ‘정권 2인자’로 불리면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임 실장을 견제하려는 성격이 짙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움직이는 '실장 3인방'의 명암
최장수 비서실장 기록 갈아치우나

임 실장의 존재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세 논란’과 더불어 역대 정권 가운데 몇 안 되는 ‘장수 비서실장’ 자리에도 올랐다. 지난해 5월 임기를 시작한 임 실장은 오는 9일 비서실장에 오른 지 1년6개월째를 맞는다. 2000년 이후 임명된 17명의 ‘대통령 오른팔’ 가운데 1년 반이 넘는 임기를 채운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임 실장은 이달 말 박근혜 정부 시절 ‘왕실장’으로 불린 김기춘 비서실장 임기마저 넘어서게 된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1년11개월 근무한 정정길 실장의 기록도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박정희 정부 이후 최장수 청와대 비서실장 타이틀까지 갖게 된다.

임 실장은 정치권의 사퇴 압력을 받기는 했지만 교체설에 휘말린 적은 없다. 그만큼 입지가 탄탄하다는 얘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전혀 다른 성향을 지녀 보완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실세 논란에도 임 실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여전히 두텁다”고 했다.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려온 비서실장이 이처럼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는 이유는 ‘비서실장 출신’인 문 대통령의 배려 덕분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과거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비서실장이 ‘일하는 존재’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비서실장의 공개활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

권한이 큰 만큼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참모들은 임 실장이 문 대통령보다 보고서를 살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치아가 빠져 병원에 다닐 정도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임 실장의 파격 행보에 ‘만사임통(모든 일은 임종석을 통한다)’이라는 말도 청와대 안팎에서 나온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경제부총리 후보로 급부상한 것이 임 실장의 ‘대학 동문’이기 때문이라는 루머가 나돌 정도로 외부에서 바라보는 임 실장의 영향력은 크다.

장하성·정의용 실장 엇갈리는 명암

경제와 외교안보 분야의 청와대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장하성 정책실장과 정의용 안보실장의 입지는 최근 들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정부 출범 초기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창하며 밀어붙인 최저임금 인상이 장 실장의 발목을 잡았다. 더구나 장 실장은 올해 최저임금이 16.4% 인상된 것과 관련, 한 인터뷰에서 “저도 깜짝 놀랐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장 실장은 자영업 경영난 등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이 불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마찰을 일으켰다. 두 사람의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문 대통령은 장 실장의 손을 들어주며 소득주도성장론에 힘을 불어넣었다.

장 실장은 지난 5월 “최근 고용지수 등 여러 지표를 받아본 결과 최저임금이 안착하고 있으며 일각에서 우려한 고용 감소 등 부작용은 크지 않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정책은 정부의 최대 승부수다.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쇼크’ 수준의 고용 악화와 소득양극화 심화 등 통계청 지표가 쏟아져나오면서 점차 입지가 좁아졌다.

반면 정의용 실장은 남북한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을 잇따라 성사시키면서 글로벌 외교가의 ‘벼락스타’로 떠올랐다. 그가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뒤 트럼프 대통령의 호의로 미·북 정상회담 성사를 직접 발표한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라인을 사실상 지휘하며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실무적으로 총괄해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향후 거취도 제각각

문재인 청와대가 이전 정부와 다른 차이점은 활발한 토론 문화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중론이다. 대통령이 결정한 사안도 토론 과정을 거치며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토론을 독려한 것도 계기가 됐지만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세 실장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세 실장의 향후 거취도 관심이다. 최장수 비서실장을 예약한 임 실장은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며 역대 비서실장과 다른 롤모델을 세워 조기에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임 실장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차기 총선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장 실장은 일각에서 퇴임 후 모교인 고려대로 돌아갈 것이란 추측이 나왔지만 그는 이미 교수 정년을 넘겨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 실장은 이와 관련, “청와대 정책실장이 내 공직의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장 실장은 “정책실장은 민간회사 어디에도 취직할 수 없다”며 “창업은 된다고 하니 조그만 투자회사를 하나 차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현재 진행 중인 남·북·미 간 평화 프로세스를 감안할 때 임기를 가늠하기 힘들다. 정 실장이 문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할 청와대의 유일한 참모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손성태/박재원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