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모마에서 세계적 미술 작품에 흠뻑

 밤이면 더욱 화려해지는 뉴욕 시내.
밤이면 더욱 화려해지는 뉴욕 시내.
‘잠들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도시는 많다. 그중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곳이 뉴욕시. 미국 최초의 메갈로폴리스이자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다.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세계 경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으니 명실상부 ‘세계의 수도’라 불릴 만하다. 숨 돌릴 틈 없이 바쁠 것만 같았던 그 여자의 뉴욕 여행은 의외로 여유로웠다. 아니, 제대로 된 힐링의 시간이었다.

여자는 먼저 모마(MoMA)로 향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의 약자다. 전 세계 관광객은 물론 뉴욕 현지인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미술관인 만큼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둘러보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섰다. 오전 10시30분 입장. 여자가 휴대폰에 주소를 입력하자 화면 위로 오디오 가이드가 띄워졌다. 현대미술관이라는 타이틀답게 인터넷에서 무료로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다. 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트렌디한가! 두 시간 이상 천천히 작품 관람을 해도 되고 1시간 정도 주요 작품만을 관람해도 된다. 혹은 특별 전시만을 택할 수도 있다. 선택의 폭은 다양하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언어가이드 서비스에 어린이와 시각장애인을 배려한 세심한 서비스에 절로 박수가 터져나온다. 덕분에 마티스, 모네, 달리, 반 고흐, 앤디 워홀 등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층 더 깊이 있게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예사로 흘렸을 작품 하나까지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첼시마켓의 인테리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첼시마켓의 인테리어
모마를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첼시 마켓(Chelsea Market)으로 향했다. 1890년대 오레오 과자 공장이던 건물을 1990년대 말 리모델링해서 만든 ‘대형 식품 매장’이다. 사실 첼시 마켓을 두고 단순히 대형 식품 매장이라고 간단히 정의내리기엔 그 수식어가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식 식품 매장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첼시 마켓 내부 분위기는 일반 마켓이라기보다 미술관에 가깝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했다고는 하지만 건물 자체는 100년 전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빵, 차, 식료품, 소품 등 다양한 취급 품목에 빈티지한 로고와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갖춘 매장들이 입점해 있다. 한데 모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개성 강한 상점 하나하나가 모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이 라인 파크·센트럴 파크서 힐링

센트럴 파크에서 즐기는 한낮의 오수.
센트럴 파크에서 즐기는 한낮의 오수.
첼시 마켓을 나와 자연스럽게 발길 닿은 곳은 떠오르는, 아니 이미 세계적인 도심 속 자연 친화 공원으로 유명한 하이 라인 파크(The High Line Park)다. 1934년 처음 운행을 시작한 하이라인 철도는 1980년에 운행이 완전히 정지되고 폐선으로 남았다.

이후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철로 철거 대신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데 힘을 모으게 된다. 2006년 철로 주변 개발 공사가 시작됐고, 2014년 9월 총 2.3㎞에 이르는 전체 구간이 모두 완공됐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경의선 숲길이나 서울로 7017 같이 옛 철길이나 고가 도로가 새롭게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솔직히 우리나라는 이제 걸음마 단계라 아직은 배울 점이 더 많다. 길이 2.3㎞, 지상 9m 높이의 공중 정원은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 있지만 전혀 답답하거나 삭막하지 않았다. 오히려 빌딩 숲과 함께 어우러진 비현실적인 녹색 나무들이 여자의 머리를 맑게 해주었다. 현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걷어내며 여자는 걷고 또 걸었다.

첼시 마켓에서 시작된 산책은 하이 라인 파크를 지나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로 이어졌다. 영화 속에서 보던 것처럼 한 팔에 암밴드를 두르고 한 갈래로 질끈 묶은 머리를 달랑거리며 조깅을 하는 언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한창 회사에서 바쁜 시간이었음에도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수천수만 가지 다양성이 공존하는 곳, 정신없이 바쁠 것만 같았던 뉴욕에서의 하루는 충분히 여유로웠다.

역시 여행에서 섣부른 선입견은 금물, 직접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는 것!

그 남자: 수많은 영화의 배경

브루클린 브리지


예술인의 거리, 브루클린
예술인의 거리, 브루클린
할 것도 많고, 갈 곳도 많은 세계 최고의 도시. 이 멋진 도시에서의 하루는 너무나 짧다. 허드슨강과 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늦은 오후가 되면 여행객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아쉬움을 삼킬 것이다. 하지만, 상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석양이 대지를 물들이는 시간이 다가오면 뉴욕의 하루가 더 불타오르게 된다. 이제 그 남자의 뉴욕 여행이 시작된다.

지난밤 다운타운 바에서 밤새 마신 술 때문인지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한다. 소호에서 시작한 맨해튼 산책은 브루클린 브리지 앞에서 멈추었다.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 오늘밤 뉴욕 여행의 시작은 이곳에서부터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브루클린 브리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킹콩>, <고질라>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한 덕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다. 다리 위로 우아하게 늘어진 철제 케이블로 이뤄진 현수교로 1층은 차도로 쓰이고 2층은 인도로 돼 있다. 인도로 들어서자 부드러운 목조 데크가 깔려 있다. 튼튼한 것은 물론이고 아름다움까지 갖춘 이 다리가 개통된 해는 1883년. 어느새 130살을 넘어선 다리다. ‘그 옛날 징검다리를 만들던 시절에 뉴욕 사람들은 이미 이런 다리를 만들었다니….’ 직접 밟고 서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발밑으로 지나가는 차들과 다리 위로 불어오는 강바람이 40여 분의 산책을 기분 좋게 했다.

건너왔던 다리를 돌아보기 좋은 포인트인 덤보(Dumbo)지구는 맨해튼 브리지와 브루클린 브리지 사이에 있는 동네 이름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멋진 기념 사진으로 인해 알려졌지만 이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포스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포토존이다. 많은 여행객이 맨해튼 브리지 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최고의 SNS 인증샷 장소로 명성이 높다.

현실 같지 않은 석양과 맨해튼의 야경

자, 이제 뉴욕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석양(sunset)을 볼 시간이다.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로 가서 피자 한 판, 맥주 한 캔과 함께 자리를 잡으면 서서히 최고의 쇼가 펼쳐진다. 브루클린 브리지의 오렌지색 전구를 시작으로 건너편 맨해튼의 고층 건물들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내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어가나 싶더니 어느새 불타오른다. 마치 최고의 노을색을 뽑아내는 최적의 조합으로 이뤄진 공기를 가진 것처럼 뉴욕의 노을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치 붉은 불꽃들이 우수수 떨어진 듯 허드슨 강도 붉게 물들었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담긴다. 고층 건물들의 실루엣 너머로 펼쳐지는 노을, 눈앞을 가로지르는 브루클린 브리지,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시키는 불빛들.
록펠러 센터의 겨울 장식
록펠러 센터의 겨울 장식
남자는 잠시 망설인다. 잠들지 않는 뉴욕의 매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간은 지금부터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맨해튼의 밤을 만끽하기 위해 어느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볼까? 뉴욕을 대표하는 3대 전망대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원월드 트레이드 센터 그리고 록펠러 센터다.

3개 모두 서로 다른 매력이 있지만 남자는 이내 록펠러 센터로 향한다. 록펠러 전망대의 67층과 69층은 통유리로 돼 있고, 70층은 실외 전망대가 있는 톱 오브 더 록이다. 너무도 유명한 톱 오브 더 록을 방문하려면 예약은 필수다. 톱 오브 더 록 입장료는 성인 기준 한화로 4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 여자 "맨해튼 중심에서 힐링을 외치다", 그 남자 "뉴욕의 클라이맥스는 해질 무렵부터지"
남자는 록펠러 센터의 GE건물 65층을 추천한다. 67, 69층도 아니고, 70층도 아니고 65층? 전망대에 올라갈 돈으로 65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칵테일 한 잔을 즐기며 전망대 못지않은 야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바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귓가에 은은하게 들려오는 빌리 조엘의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New York state of mind), 내 손에 쥐어진 투명함이 감도는 와인 한 잔. 눈앞에 펼쳐진 뉴욕 시내의 아름다운 불빛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나는 뉴욕시에 있다(I am in New york City).

뉴욕=글 정민아 여행작가 jma7179@naver.com / 글·사진 오재철 여행작가 nixboy99@daum.net

그 여자 "맨해튼 중심에서 힐링을 외치다", 그 남자 "뉴욕의 클라이맥스는 해질 무렵부터지"
※ 그 남자(오재철), 그 여자(정민아) : 결혼과 동시에 414일간 신혼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의 그 남자와 웹기획자 출신의 그 여자는 부부이기에 앞서 한 개인으로서 한 지역에서 경험하게 되는 두 가지 여행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공동 저서로 《함께, 다시, 유럽》,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등이 있다.

여행 메모

항공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에서 뉴욕으로 가는 직항편을 주7회 운항한다. 약 14시간 걸린다.

그 여자 "맨해튼 중심에서 힐링을 외치다", 그 남자 "뉴욕의 클라이맥스는 해질 무렵부터지"
시차: 우리나라보다 14시간 늦다. 3월 둘째 일요일부터 11월 첫째 일요일까지 서머타임을 실시해 13시간 차이가 난다.

기후: 뉴욕은 한국과 거의 비슷한 기후로 사계절이 뚜렷하다. 다른 점이라면 봄과 가을이 한국에 비해 짧고 여름과 겨울이 길다.

센트럴 파크: 뉴욕 맨해튼의 상징이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도시 공원이다.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4㎞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며, 5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심어져 있어 ‘뉴욕의 허파’라고도 불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불과 150년 전에는 이곳이 쓰레기장이었다는 사실! 현재는 뉴욕커들의 쉼터이자 해마다 2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공원으로 꼽힌다.

뉴욕 현대 미술관: 매주 금요일 오후 4~8시까지는 무료 입장할 수 있으나 관람객이 붐비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