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미약’과 관련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 4일까지의 참여인원 최다 기준으로 10건 중 7건에 이른다. 이 7건의 참여인원만 220만에 달한다. 음주, 우울증, 조현병 등을 이유로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 논란이 제기된 사건들이 청원 대상이 되었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인 김성수의 엄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인원 110만 명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웠다. 김 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진단서를 제출하자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이 우려돼 국민들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달 22일 게재된 여성의 질과 항문에 팔을 넣어 사망에 이르게 한 엽기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2013년 직장 동료인 30대 남녀가 술을 마시고 모텔에 갔다. 가해자 남성은 피해자 여성의 질과 항문에 손을 삽입했고, 피해자는 끝내 사망했다.
부검 결과 피해자는 외음부 외부와 질 아래 항문으로 수직열창, 자궁동맥 파열, 직장 절단, 후복막강 출혈, 복벽 근육층과 대장조직 괴사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식 사인은 '자궁동맥 파열에 의한 대량 실혈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사'였다.
이후 상급심은 "가해자가 술에 취해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과도한 성행위 도중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이 인정된다"며 1년 감형된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지난 5월 여자친구의 복부를 때려 숨지게 한 20대 남성에게도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이 적용되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오래전부터 조현병 등으로 치료를 받아왔으며 사건 당시에도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피의자는 사건 발생 일주일 전에도 여자친구의 뒤통수를 때려 입건된 바 있다.
심신미약 감경은 형법 제10조 제2항을 따른다.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 혹은 의사를 결정한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는 내용이다. 형법 55조에 따라 심신미약자는 1/2 감경한 범위 내에서 법정형을 선고 받는다. 심신미약을 인정받기만 하면 무거운 처벌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심신미약의 주된 근거가 되는 음주, 우울증, 조현증 모두 그렇다. 음주의 경우, 조두순에 대해 소위 주취감경을 인정했다가 법원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취 범행은 가중 사유가 될지 언정 감형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의견이다. 주취를 이유로 피의자는 정확한 정황 진술을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범행 경위, 범행 수단, 범행 전후의 행동 등을 놓고 더 엄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우울증은 심신미약을 적용받기 더 어렵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질환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우울증을 보이더라도 이로 인해 충동적인 행동을 보일 확률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조현병의 경우 우울증에 비해 공격적이거나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기 쉽다.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지난 달 25일 국회는 일명 ‘김성수법’(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감형한다’는 의무조항을 ‘감형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바꾸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독일 등에서는 심신미약자에 대해 의무적인 형 감경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30일 국무회의에서 심신미약 의무조항의 재검토를 주문했다. 법무부에까지 현행 형법을 재검토 해줄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는 이미 지난해 11월 ‘주취감형 폐지’ 청원이 올라오자 “심신상실로 인한 감경규정은 통상적인 감경규정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바로 삭제하는 것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그러나 4일 현재 청와대는 2건의 심신미약 관련 국민청원을 놓고 또 다시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조기현 중앙헌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심신미약을 감형하게 된 것은, 근대 형법이 고의와 책임을 구분하는 이른바 형법상 책임론 때문인데, 근대 형법의 책임론 역시, 당시 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된 제도이지 이것이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필수적인 논리구조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관에 따라 근대적 관점이 엄격하게 반영된 심신미약 의무 감형제도는 오늘날 국민들의 법감정에 비춰, 적절히 개선될 필요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미나/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