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으로 시효 넘기자"…재판절차 구실로 징용소송 봉쇄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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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행정처 "파기환송-조정 거치면 다른 피해자 소송 불가"
'2015년 시효만료' 5년 전 이미 판단…"고의 지연 땐 국가 배상책임 가능성"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민사 소송을 파기한 뒤 화해·조정에 부쳐 소멸 시효를 넘기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켜 다른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을 봉쇄하고 사법부가 징용피해자와 일본 전범 기업 중 한쪽 손을 들어줘야 하는 위험부담도 줄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징용소송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던 2013년 12월 '장래 시나리오 축약(대외비)' 문건에서 이런 방안을 제시했다.
문건은 당시 차한성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 찾아가 재판 지연 방안을 논의하고 온 직후 사법정책실에서 작성했다.
법원행정처는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을 기산점으로 삼고 민법상 소멸 시효 3년이 지나도록 재상고심 결론을 미루는 방안을 구상했다.
문건은 2012년 5월 이후로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만 구제되고 나머지는 소멸 시효가 완성돼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점에 착안했다.
구체적 지연 방법으로는 화해·조정 시도가 제시됐다.
파기환송심이 1억원으로 책정한 위자료 액수를 문제 삼아 사건을 고등법원에 돌려보낸 뒤 화해나 조정을 시도해 시간을 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위자료 액수에 대해 "6·25 당시 학살 등 과거사 사건과 비교해 위자료 액수 과다 판단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5천만원 정도를 책정한 일본의 화해·조정 결정을 참고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대법원 파기환송과 조정을 거치는 동안 나머지 피해자들은 소멸 시효가 완성돼 소송 제기가 불가하다"며 "독일 같은 정도의 적정한 보상금 지급(300만원 정도)으로 갈음 가능하다"고 적었다.
문건 속 시나리오대로라면 재판 지연으로 소송을 제때 제기하지 못한 피해자들은 이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인정된 1억원이 아니라 별도로 설립된 재단을 통해 수백만원의 배상금을 받게 된다.
법원행정처는 소송 대신 한일 양국 정부와 일본 기업이 함께 출연하는 재단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다.
20만명으로 추산되는 피해자들에게 모두 1억원씩 지급할 경우 20조원에 달하는 재원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배상판결이 시효 안에 확정되고 추가 소송이 이어질 경우 한일관계 악화와 1965년 청구권협정의 정당성 훼손을 우려한 박근혜 청와대의 의중을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반영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확정한 이후 추가 소송 가능성을 두고 소멸 시효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양승태 사법부는 2015년 5월 소멸 시효가 만료된다고 명확히 판단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본 기업의 소멸 시효 주장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배척하면서도 시효가 언제 시작하고 끝나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대법원은 판결 이후 "하급심 재판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법원행정처 문건은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 선고 후 3년 이내'를 추가 소송이 가능한 기간으로 수차례 언급한다.
그러면서 재단 설립 역시 "소멸 시효 완성 시점을 고려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비슷한 시기 작성한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 재단 검토'라는 제목의 문건에서도 소멸 시효가 완성된 날을 기점으로 배상 액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소멸 시효가 끝나기 전이라면 판결과 비슷한 금액의 배상이 필요할 수 있지만, 시효가 완성된 경우 법적인 청구가 불가능한 상황을 고려해 배상액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소멸 시효를 활용해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봉쇄하는 이런 지연 전략이 실제 재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수사와 재판에서 확인된다면 소송을 제때 내지 못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종결론이 지연되는 사이 다른 징용피해자들에게 소멸 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특별법이 발의될 만큼 당시 사법부 안팎에서 소멸 시효에 관한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 점도 이 같은 주장의 근거다.
이언주·문병호·박영선 등 국회의원 15명은 2015년 3월 '일제강점하 강제징용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하면서 당시 법원행정처와 같은 방식으로 소멸 시효를 계산했다.
법안은 "(2012년 대법원 판결로부터 3년이 지난) 5월 23일부로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가 소멸할 예정"이라며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의 일부만 소송을 제기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이들 외에도 다수의 피해자에 대한 소송참여가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다른 피해자들이 추가 소송을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식하고서도 법원행정처 관계자 등이 고의 또는 불법행위로 재판을 지연시켜 소멸 시효를 넘기도록 했다면 국가가 배상책임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5년 시효만료' 5년 전 이미 판단…"고의 지연 땐 국가 배상책임 가능성"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민사 소송을 파기한 뒤 화해·조정에 부쳐 소멸 시효를 넘기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켜 다른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을 봉쇄하고 사법부가 징용피해자와 일본 전범 기업 중 한쪽 손을 들어줘야 하는 위험부담도 줄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징용소송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던 2013년 12월 '장래 시나리오 축약(대외비)' 문건에서 이런 방안을 제시했다.
문건은 당시 차한성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 찾아가 재판 지연 방안을 논의하고 온 직후 사법정책실에서 작성했다.
법원행정처는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을 기산점으로 삼고 민법상 소멸 시효 3년이 지나도록 재상고심 결론을 미루는 방안을 구상했다.
문건은 2012년 5월 이후로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만 구제되고 나머지는 소멸 시효가 완성돼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점에 착안했다.
구체적 지연 방법으로는 화해·조정 시도가 제시됐다.
파기환송심이 1억원으로 책정한 위자료 액수를 문제 삼아 사건을 고등법원에 돌려보낸 뒤 화해나 조정을 시도해 시간을 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위자료 액수에 대해 "6·25 당시 학살 등 과거사 사건과 비교해 위자료 액수 과다 판단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5천만원 정도를 책정한 일본의 화해·조정 결정을 참고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대법원 파기환송과 조정을 거치는 동안 나머지 피해자들은 소멸 시효가 완성돼 소송 제기가 불가하다"며 "독일 같은 정도의 적정한 보상금 지급(300만원 정도)으로 갈음 가능하다"고 적었다.
문건 속 시나리오대로라면 재판 지연으로 소송을 제때 제기하지 못한 피해자들은 이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인정된 1억원이 아니라 별도로 설립된 재단을 통해 수백만원의 배상금을 받게 된다.
법원행정처는 소송 대신 한일 양국 정부와 일본 기업이 함께 출연하는 재단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다.
20만명으로 추산되는 피해자들에게 모두 1억원씩 지급할 경우 20조원에 달하는 재원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배상판결이 시효 안에 확정되고 추가 소송이 이어질 경우 한일관계 악화와 1965년 청구권협정의 정당성 훼손을 우려한 박근혜 청와대의 의중을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반영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확정한 이후 추가 소송 가능성을 두고 소멸 시효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양승태 사법부는 2015년 5월 소멸 시효가 만료된다고 명확히 판단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본 기업의 소멸 시효 주장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배척하면서도 시효가 언제 시작하고 끝나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대법원은 판결 이후 "하급심 재판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법원행정처 문건은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 선고 후 3년 이내'를 추가 소송이 가능한 기간으로 수차례 언급한다.
그러면서 재단 설립 역시 "소멸 시효 완성 시점을 고려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비슷한 시기 작성한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 재단 검토'라는 제목의 문건에서도 소멸 시효가 완성된 날을 기점으로 배상 액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소멸 시효가 끝나기 전이라면 판결과 비슷한 금액의 배상이 필요할 수 있지만, 시효가 완성된 경우 법적인 청구가 불가능한 상황을 고려해 배상액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소멸 시효를 활용해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봉쇄하는 이런 지연 전략이 실제 재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수사와 재판에서 확인된다면 소송을 제때 내지 못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종결론이 지연되는 사이 다른 징용피해자들에게 소멸 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특별법이 발의될 만큼 당시 사법부 안팎에서 소멸 시효에 관한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 점도 이 같은 주장의 근거다.
이언주·문병호·박영선 등 국회의원 15명은 2015년 3월 '일제강점하 강제징용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하면서 당시 법원행정처와 같은 방식으로 소멸 시효를 계산했다.
법안은 "(2012년 대법원 판결로부터 3년이 지난) 5월 23일부로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가 소멸할 예정"이라며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의 일부만 소송을 제기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이들 외에도 다수의 피해자에 대한 소송참여가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다른 피해자들이 추가 소송을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식하고서도 법원행정처 관계자 등이 고의 또는 불법행위로 재판을 지연시켜 소멸 시효를 넘기도록 했다면 국가가 배상책임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