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경제를 파탄내는 잘못된 市場觀
최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행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발언에 나타난 그의 시장관(市場觀)이 수상하다. 시장이 양극화와 소득불평등 심화를 초래하는 이유는 ‘목적을 상실한 성장 때문’이라는 게 발언의 핵심이다. 유감스럽게도 장 실장은 시장을 조직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목적이 없는 시장을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등의 목적에 합당하게 조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누적된 모순’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는 질서로서의 조직 외에도 ‘자생적 질서’가 존재한다는, 그리고 시장의 본질은 자생적 질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는 기업이나 개인이 공동으로 추구할 국가적 목적이 없다. 그들이 제각기 추구하는 개별 목표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질서가 형성되는 이유는 각처에 분산된, 어떤 방법으로도 전부 수집·이용하기는 불가능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는 가격 구조와 함께 자유·소유의 존중, 계약준수 의무, 자기책임 같은 도덕 규칙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만의 인구가 조화로운 시장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범세계적으로 확장된 열린사회가 유지되는 것도 이런 가격구조와 도덕률 덕분이다.

장 실장이 자생적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기업이라는 ‘조직’을 다루는 경영학자이기 때문이다. 조직사고를 가지고 시장을 보니, 기업처럼 사령탑도 보이지 않고 시장을 포괄하는 목적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만든 조직과 달리 시장의 자생적 질서는 특정한 집단적 목적을 위해서 계획해 만든 질서가 아니다. 언어처럼 저절로 형성된 시장도덕률이 나타나면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게 시장이라는 걸 그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시장을 조직으로 이해하는 사고는 시민을 국가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권력국가’란 무서운 국가관을 전제하고 있다. 여기서 국가와 개인은 주인과 노예관계다. 개인의 자유와 재산은 전적으로 국가의 자의에 예속돼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강압적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이다. 필요하면 언제든 임대료 통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을 강제하듯 권력을 제한 없이 행사해 자유를 억압하는 게 권력국가의 속성이다. 삼권분립도 무시한다. 전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다. 경제적 자유는 물론 언론의 자유도 없다. 기업이 정부 정책에 저항하려면 사업을 접을 각오부터 해야 한다. 권력국가의 최고 절정은 인간의 삶을 황폐화한 옛 소련과 독일인들을 노예로 만든 나치즘이다.

시장을 자생적 질서로 이해할 경우 필요한 건 법치국가다. 그 역할은 자생적 질서를 법치국가적 법을 통해 보호하는 일이다. 국가가 결정했다고 해서 모두 다 법이 되는 건 아니다. 보편·추상적 성격을 가진 것만이 법이다. 이런 성격의 법은 달성해야 할 집단적 목적이 없다. 폭력, 강제, 사기 등 불의(不義)의 행동을 금지하는 내용일 뿐이다. 재정이나 법적 특혜를 부여하는 내용의 법은 법이 아니다.

이와 같이 법치국가의 권력은 엄격히 제한된다. 그러나 권력국가적 법은 차별적 시장규제, 재분배와 보조금 형태의 특혜 등 특정한 소득계층의 특수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권력국가는 이해관계의 정치를 하는 반면 법치국가는 원칙의 정치를 한다. 전자의 정책은 단기적인 데 비해 후자의 정책은 장기적 성격을 갖는다. 권력국가의 단기 정책은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효과만 야기한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장기적 효과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면 딱할 정도다.

국가가 자유와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법치국가적 법에 의해 통치될 때 시장은 국가의 간섭 없이도 고용·성장·빈곤·분배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 정부가 개입하면 시장은 자생력을 상실하고, 그 결과는 좌파 집권 2년이 또렷하게 보여주듯 양극화, 실업, 성장 추락으로 나타난다.

정부가 할 일은 법치국가적 법에 저촉되는 모든 규제를 제거해 경제적 자유를 확립하는 일이다.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같은 ‘주술경제’는 한때는 잘나가다가 시민들이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으로 귀결될 뿐이다. 어설픈 지식으로 한국 경제를 그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