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국내외를 돌며 ‘미래 먹거리’를 직접 챙긴 데 이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사실상 끊어졌던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과의 네트워크 복원에도 나섰다. 지난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 부회장이 수개월간의 ‘워밍업’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삼성의 운전대를 잡은 만큼 ‘뉴 삼성’ 구축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복원 나선 이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7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날 행사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사티아 나델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를 서울 시내 모처에서 만났다. 이 부회장이 지난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국내에서 글로벌 기업 CEO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인공지능(AI)은 물론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 센터, 5세대(5G)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등 미래 성장산업에 대한 협력 확대를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두 회사 기술진이 정기적으로 만나 AI 등 미래성장 분야 기술을 협의하고 경영진 간 교류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노트북 스마트폰 등 주요 제품에 M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탑재해주고, MS는 클라우드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삼성전자 반도체 주문량을 늘리는 등 실질적인 협력강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나홀로 모든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글로벌 강자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며 “총수가 직접 챙긴 덕분에 삼성이 MS와 강력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델라 CEO는 2014년 취임 후 클라우드 사업을 성공시키며 침몰하던 MS를 되살린 ‘구원투수’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 부회장과 몇 차례 만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최순실 사태로 구속되기 전만 해도 매년 구글 페이스북 IBM 등 글로벌 IT 기업 CEO를 만나 협력방안을 모색했다”며 “이 부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크 복원에 나섰다는 건 구심점 없이 흔들렸던 삼성 경영이 다시 정상화 수순에 들어갔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미래사업, 오너가 직접 챙긴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
사티아 나델라 MS CEO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가 한층 더 빨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이 최근 한두 달 사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8700여 명 정규직 채용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전원 보상 △순환출자 완전 해소 등 ‘10년 묵은 난제’들을 차례차례 해결한 것도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분야로 AI 등 미래 성장동력 분야를 꼽는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이후 매달 한 번꼴로 캐나다 유럽 중국 인도 등지를 방문해 4대 성장동력으로 선정한 AI, 자동차 전장, 바이오, 5G 이동통신 사업을 점검했다.

9월에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을 찾아 미래 기술 개발 현황을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스마트폰 TV 등 각종 제품을 만드는 사업부가 아닌 5~10년 뒤 상용화 가능성이 있는 미래 기술을 살펴보는 ‘연구개발(R&D) 심장’을 방문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총수가 장기 비전을 갖고 미래를 챙기고 있다는 메시지를 임직원에게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 후폭풍으로 삼성의 인수합병(M&A) 시계가 2년 가까이 멈춰섰다”며 “이 부회장이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는 만큼 대규모 M&A가 재개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