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기술유출 방지에 대한 제언
특허법인 제나, 최영수 변리사
특허법인 제나, 최영수 변리사
최근 기업들의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 사례가 급증하면서, 기술보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에 대기업들 대부분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여 자신들의 기술보호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으나, 상당수의 중소기업들은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인력적, 재정적 여건으로 인해 기술보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하에서는 필자가 대리하는 중소업체 A에서 발생된 기술유출 사건이 시사하는 바를 중심으로 중소기업들의 기술유출 방지 방안에 대해 제언해 보고자 한다.

작년 초 중소업체 A는 연구원 X가 제품의 핵심 기능 구현에 관한 설계안, 실험 결과 데이터 등의 자료들을 협력업체 B로 유출함에 따라 협력업체 B가 유사한 제품을 개발하게 된 것을 인지했다. 중소업체 A는 즉각적으로 연구원 X와 협력업체 B에게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이라 칭함)을 근거로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기한 민, 형사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제2호의 요건, 즉 반출된 자료들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양측이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소송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제2호는 ‘영업비밀’을 ①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비밀성), ②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독립적 경제성), ③ 합리적인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비밀 관리성) 생산 방법, 판매 방법 기타 영업 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법원은 요건 ①의 비밀성을 유출된 자료가 공개된 간행물 등에 게재되지 않고 비밀 상태이며, 보유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입수할 수 없는 것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고, 요건 ②의 독립적 경제성을 경쟁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거나 또는 정보의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필요한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요건 ③의 비밀 관리성을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시를 하거나 고지를 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나 접근방법을 제한하고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객관적으로 정보가 비밀로 유지 및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식 가능한 상태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위 사례에서는 세 가지 요건 모두에 대해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먼저, 요건 ① 및 ②와 관련하여서는 비밀성과 독립적 경제성을 갖는 영업비밀의 특정이 문제되고 있다. 연구원 X에 의해 유출된 자료들이 최종 버전이 아닌 중간 버전의 문서들에 해당하다 보니 자료들에 중소업체 A의 제품과 관련된 정보임을 지시하는 기재가 없고 또 제품과 관련된 정보와 인터넷, 간행물 등을 통해 공지된 정보가 무분별하게 혼합되어 있어 중소업체 A의 영업비밀 특정과 그의 비밀성, 독립적 경제성의 입증이 쉽지 않은 상태다.

다음으로, 요건 ③과 관련하여서는 비밀 관리성의 입증이 문제되고 있다. 중소업체 A가 연구원 X에게 보안 서약서를 받아놓고 주기적인 보안 교육을 제공해왔으나, 연구원 X에 의해 유출된 자료들에 보안 등급의 표시가 되어있지 않고, 해당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 설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연구원 X가 개인적으로 보관 가능하도록 관리되어 왔다는 점에서 문제되고 있다.

이러한 쟁점 사항들을 고려할 때 중소기업들의 기술유출 방지 대책 및 방안들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먼저, 문서 관리 체계의 도입이 필요하다.

중소업체 A는 기술유출 사례는 아니지만 수년 전에 해외특허분쟁을 겪으면서 문서 관리 체계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됐고, 그 후부터 부분적으로 운영되던 문서 관리 체계의 개선 방향에 대해 고민해왔다. 특히, 많은 팀, 그룹별 회의를 거쳐 제품 설계안이 구체화되는 연구개발 특성 상, 연구원들이 개인 PC를 통해 개별적으로 자료를 준비, 보관하다보니 서식 관리가 어렵고 문서 관리에 허점이 생기고, 준비된 자료들을 메신저, 메일 등을 통해 팀, 그룹에 속한 타 연구원들과 공유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문서의 추적과 진본성 입증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로 인해, 중소업체 A는 문서 중앙화 솔루션의 도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서 중앙화 솔루션의 도입에 소요되는 많은 시간과 큰 비용 부담으로 인해 결정이 미뤄지던 차에 위 사례와 같은 기술유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위 사례의 중소업체 A가 문서 중앙화 솔루션의 도입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존의 문서 관리 체계를 가다듬어, 정형화된 서식을 정립하고, 중간 버전을 비롯 최종 버전 문서들에 대한 저장, 보관, 공유, 접근 방법 등을 규정화하여 운영하고 있었다면, 위 사례에서 다툼이 있었던 쟁점 사항들을 더 유리하게 끌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연구원 X가 작성한 중간 문서들에서 영업비밀을 명확하게 특정하고, 그 영업비밀의 보호를 위해 사측에서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주장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중소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당해 기업의 규모나 현실 여건에 맞는 수준에서 문서 관리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문서 관리 체계의 도입은 비용 등 여러 측면에서 중소기업에게 큰 부담인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도, 최근 솔루션 제공 업체들이 가격적으로 저렴한 기업 맞춤형 문서 관리 솔루션들을 선보이고 있어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또,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태진단, 규정수립, 기술유출 대응 및 보안교육 등을 위한 컨설팅과 함께 기술유출방지시스템 구축, 기술자료임치 서비스 등 다양한 기술유출 방지 지원사업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효율적인 문서 관리 체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영업비밀 관리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실무적으로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제2호의 요건 중에서 ③ 요건, 즉 비밀 관리성이 가장 문제된다. 영업비밀의 보유자가 합리적인 노력으로 평가될 만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해당 요건을 결여한 것으로 보고 유출된 기술 등을 영업비밀로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법원이 ‘합리적인 노력’과 관련하여 엄격한 판단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므로, 중소기업은 단순히 임직원에 대한 보안서약서 징구 및 영업비밀 누설금지 의무의 부과와 같은 형식적인 관리만으로는 부족하고, 중소기업들이 상술한 문서 관리 체계의 도입, 운영 외에도 영업비밀의 보호를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그 증거를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구 중소기업청)에 의해 발간된 “중소기업 기술보호 매뉴얼”에서는 비밀 관리성과 관련하여 정보접근자 지정 및 제한, 관리규정 제장 및 종업원 서약, 비밀보관소 지정 및 출입제한, 대외비 또는 기밀자료 표시와 같은 등급표시, 보안담당자 지정, 보안장치 설치, 방화벽 등의 네트워크 보안 등을 비밀 관리성의 판단 요소로 예시하고 있다.

최대한의 노력을 위해 예시한 요소들이 모두 이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중소기업은 규모 및 재정상황에 비추어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되므로 이들 중 일부라도 이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영업비밀 보호제도와 특허제도를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여 중소기업 고유의 핵심기술들을 보호해야 한다.

영업비밀 보호제도는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를 방지하여 건전한 거래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제도인 반면, 특허제도는 발명을 보호, 장려하고 그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취지가 서로 상이하다. 이러한 취지의 차이로 인해, 두 제도는 법적성격, 보호대상, 절차와 보호기간, 독점성, 침해행위 및 입증책임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법적성격 측면에서 영업비밀은 비밀로 유지, 관리되고 있는 사실상태의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특허는 공개를 대가로 부여되는 독점적 권리 성격을 갖는다. 보호대상 측면에서 영업비밀은 제법, 공정, 형태, 편집 등의 기술상 정보는 물론 고객명부, 마케팅 계획, 판매기법 등의 경영상 정보를 대상으로 하지만, 특허는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서 고도할 것이 요구되는 발명을 대상으로 한다. 절차와 보호기간 측면에서 영업비밀은 등록을 필요로 하지 않고 공연히 알려지기 전까지 보호 가능하나, 특허는 등록을 필요로 하며 출원일로부터 20년까지의 존속기간이 규정되어 있다. 독점성 측면에서 영업비밀은 동일 영업비밀이 병존 가능하며, 권리행사에 제한이 없으나, 특허는 동일 특허권의 병존이 불가능하며 강제, 법정 실시권 등 권리행사에 제한이 있다. 침해행위 및 입증책임 측면에서 영업비밀은 절취, 기망 등의 부정 취득 행위, 부정 취득한 영업비밀의 사용, 공개 행위 등을 침해행위로 규정하고 있고 보호대상을 원고가 입증해야하나, 특허는 정당한 권원없이 특허권을 업으로서 실시하는 행위를 침해행위로 규정하고 있고 통상적으로는 보호대상이 확정되어 있어 피고가 비침해를 입증해야한다.

하지만, 영업비밀 보호제도와 특허제도는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공통되며, 중소기업이 자신의 핵심기술을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것인지 아니면 특허로 보호받을 것인지는 두 제도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선택해야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가령, 핵심기술의 미공개로 인해 기술경쟁에서 우위를 계속 점할 수 있다면 영업비밀로 유지하여 영업비밀 보호제도를 통해 보호받는 것이 유리하지만, 경쟁자들이 역설계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이라면 침해 입증이 용이한 특허권을 확보하여 특허제도로 보호받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경쟁자들의 역설계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경우라면, 침해 입증의 용이성과 함께 효력 요건 관련 기업의 비밀 관리 능력이나 특허의 등록 가능성 등을 적절히 고려하여 보호받고자 하는 제도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위 사례에서 연구원 X에 의해 유출된 자료들은 경쟁자들이 역설계로 충분히 유사한 성능을 구현해낼 수 있는 정도의 기능과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중소기업 A는 해당 기능에 대한 특허권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만약, 중소기업 A가 제품 개발 단계에서 해당 기능의 특허성을 타진해보고 특허출원을 진행하여 권리를 확보해두었다면, 협력업체 B에 대해서 특허권에 기하여 보다 쉽게 제재를 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중소기업들이 제품의 개발단계에서 도출된 다양한 기술들을 그 속성과 제도의 장단점들을 고려하여 어떠한 제도로 보호받는 것이 유리한지 판단해보고, 판단 결과에 따라 기술들을 적절히 보호받을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보통 중소기업들에게는 산적된 현안 문제들로 인해 앞서 제시한 방안들의 중요도, 처리순서가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핵심기술이 유출되면 복구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될 수 있다는 점, 시간이 지날수록 또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문서 관리 체계의 도입, 교체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문서 관리 체계 도입 등은 비교적 시급성이 높은 업무들이라고 볼 수 있다. 모쪼록, 중소기업들이 제시한 방안들을 실천함으로써, 핵심기술이 다른 기업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 그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글= 특허법인 제나, 최영수 변리사

정리= 경규민 기자 gyu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