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중소형주들이 지난 7일 폭락한 배경에 국민연금의 ‘묻지마 투매’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올해 수익률이 부진했던 펀드 위탁운용사들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신규 운용사가 기존 펀드에 담겼던 일부 종목을 한꺼번에 매도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준 것이다.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연기금이 증시 ‘안전판’ 역할은 못해줄망정 공포를 더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전판' 역할은커녕…시장 충격 키운 국민연금
위탁운용사들 “일단 팔자”

8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전날 새로 선정한 국내 주식 위탁운용사들에 기존 운용사의 포트폴리오를 배분했다. 지난달 안효준 신임 기금운용본부장(CIO) 취임 후 위탁운용사들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운용사를 전격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운용사들은 기존 운용사들이 보유했던 주식 현물을 받는 형태로 운용을 시작한다. 시장에선 국민연금이 2조원어치 주식을 회수한 뒤 새로 선정된 운용사들에 절반을 배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규 운용사들은 국민연금 보유 주식을 받자마자 포트폴리오 교체에 나섰다. 전날 연기금이 코스닥시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매물(순매도 1327억원)을 쏟아낸 배경이다. 그 여파로 이상 급락 종목이 속출했다. 나스미디어는 연기금 매물이 126억원어치 쏟아지면서 20.03% 급락했다. 컴투스(-9.76%) 리노공업(-9.17%) 상아프론테크(-8.11%) 케어젠(-5.58%) 등도 같은 이유로 급락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도 삼양홀딩스(-13.11%) 유나이티드제약(-9.50%) 현대일렉트릭(-9.42%) 동원산업(-9.17%) 등이 연기금 투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현물로 주식을 넘겨받은 운용사들은 본인들이 잘 모른다고 판단되거나 앞으로 하락할 것 같은 종목을 판다”며 “시장에 충격을 주면서 무리하게 밀어낸 것은 다른 운용사들이 팔기 전에 미리 팔아 손해를 줄이자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운용사 교체 시즌마다 시장 충격이 있었지만 이번엔 유독 피해가 컸다. 투자심리가 불안한 상황에서 연기금 매도가 시장 공포를 불러 투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하필이면 미국과 북한의 고위급회담이 연기됐다는 보도가 나온 오후 2시부터 팔기 시작해 공포에 떨면서 손절매한 투자자가 많았다”며 “시장 수급이나 심리가 워낙 좋지 않다 보니 받아주는 매수 주체도 없었다”고 전했다.

“투매 방지책 마련해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의 운용사 교체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에서는 연기금이 운용사를 교체할 때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특정 종목을 한꺼번에 매도하지 못하도록 관리한다”며 “투매를 방지할 장치를 마련하지 못해 결국 다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고, 국민연금 가입자들도 손실을 입게 됐다”고 지적했다. 펀드 종목 교체 시 블록딜(기관투자가 간 대량매매)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연금의 이번 운용사 교체가 코스닥 비중을 줄이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날 연기금은 코스닥시장에서 1327억원을 순매도한 반면 유가증권시장에선 887억원을 순매수했다. 안 CIO 취임 이후 국민연금이 변동성이 큰 코스닥시장 비중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배당률이 높고 안정성이 높은 유가증권시장 비중을 늘리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국민연금이 외국인의 ‘셀 코리아’에 가세하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다. 연기금은 하반기 들어 국내 증시에서 922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연기금이 증시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요즘엔 시장이 오를 때 같이 사고 내릴 때 더 팔고 있어 시장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며 “국내 증시가 외국인 수급에 더욱 휘둘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만수/나수지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