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정체성'이 지배한 美 중간선거
지난 6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는 미국사에서 극히 이례적이었다. 유권자들은 선거일 새벽 5시부터 길게 줄지어 차례를 기다렸다. 세 시간이나 넘게 기다려 투표한 유권자도 많았다. 투표자만 1억1300만 명으로, 투표율이 49%에 이른다고 한다. 평소보다 10%포인트 높다. 이쯤이면 거의 대선을 치른 셈이다. 선거가 끝나고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모두 자신이 승리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도 흥미 있는 대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완벽한 승리’라고 표현했고,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도 ‘미국의 새로운 날’이 열렸다고 반겼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투표한 정당의 승리를 확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양당의 대세 낙관론은 오히려 미국 정치 체제 발전에 좋은 소식이라고 평가한다. 선거의 이상 열기도 그렇지만 결과에 대한 평도 각양각색이다. 상·하원을 하나씩 나눠 가진 결과가 그리는 풍경이다.

참전용사들도 정치에 적극 참여

선거에 당선된 후보들도 특이하다. 흑인 여성과 무슬림 하원의원이 처음 등장했다. 인디언 원주민도 두 명이나 나왔다. 더욱 놀랄 만한 일은 77명의 참전 용사들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곳을 합하면 80명을 넘는다. 이 가운데 17명은 정치에 첫 입문한 신인들이다. 퇴역 군인들이 이렇게 많이 정치에 뛰어든 건 처음이다. 여성 참전용사들도 눈에 띈다. 공군 조종사도 있고 해군의 원자력 엔지니어도 정치에 입문했다.

정치 수요자들인 미국인들의 성향 변화가 만든 현상이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처음부터 중간선거에 적극 관심을 보였다. 그들의 소셜네트워크와 페이스북은 선거 마케팅의 타깃이 됐다. 여성들도 제 목소리를 냈으며 퇴역 군인들도 자신들의 처우 개선 등을 관철시키려 노력했다. 총기 인정 여부나 경제, 환경, 테러 등 전통적인 쟁점들은 더 이상 그들의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유권자들은 그들을 인정하고 호흡을 같이하며 분노를 같이 표출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졌다. 세대들마다 나름의 방식대로 선거를 즐겼다.

무엇보다 관심은 트럼프 개인이었다. 트럼프의 정치 행태에 호불호가 분명히 갈라졌다. 정치 전달체계도 확연한 변화가 있었다. 기존의 TV를 주 매체로 하는 정치광고와 여론전은 설득력을 잃었다. 유튜브와 트위터 등이 오히려 이들을 대체했다.

다양한 정치수요에도 양당제 확고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 《아이덴티티(Identity)》에서 지금 미국의 정치판을 흔드는 단어는 아이덴티티(정체성)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종교 인종 교육수준이나 성별 등에 따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는다. 경제적인 이득보다 오히려 자신들의 존엄성과 품위를 손상시키는 데 분노하고, 이들을 원상복구시킬 수 있도록 행동한다고 후쿠야마는 보고 있다. 이런 분노를 이용한 정치가 바로 ‘트럼프의 정치’라는 주장이다.

다양화되고 분권화된 정치적 수요가 등장하면서 기존 양당 체제가 이를 수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도 대두된다. 새롭게 분출되는 미국인들의 아이덴티티는 양당 체제에 맞지 않은 것들도 많다. 하지만 양당 시스템의 묘미는 비슷한 아이덴티티들을 포용하는 것이다. 트럼프와 같은 아웃라이어들도 양당 체제 속에 녹아들고 있다. 미국 민주제도의 강점인 양당 체제의 견제와 균형은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면서 2년 뒤 대선에서도 여전히 지속될 것 같다. 그것이 미국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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