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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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발(發) 보건복지부 수난사’가 재연될 조짐이다. 2013년엔 기초연금, 이번엔 국민연금이 진원지다. 2013년 당시 진영 복지부 장관은 ‘항명 사퇴’를 했고, 박능후 현 장관은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의 뜻을 거슬렀다는 게 이유다.

이번엔 내상이 더 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연금담당 복지부 국·과장은 개혁안 사전 유출 의혹을 이유로 휴대폰까지 청와대에 압수당했다. 앞으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식의 국민연금 개혁은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게 됐다는 게 복지부 안팎의 분위기다.

또 연금…‘최대 위기’ 복지부

여당 고위 관계자는 8일 “청와대가 최근 복지부 장관 세평을 듣고 다닌다”며 “교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매끄럽지 못한 일 처리에 대한 문책성 교체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여당 관계자는 “교체 가능성이 반반이었는데, 어제 대통령이 박 장관을 사실상 질책하면서 교체설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박 장관은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급액)을 현행 45%로 유지 또는 50%로 인상하려면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 또는 13%까지 올리거나, 소득대체율은 40%로 낮추되 보험료율을 15%까지 올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혁안을 보고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보험료율 인상이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는 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설명한 이유였다. 청와대는 그러나 이날 박 장관 교체를 공식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보험료 인상론' 폈다가…靑에 휴대폰 압수당한 복지부 간부들
정부·여당에 따르면 박 장관을 향한 청와대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지난 8월부터다. 소득대체율을 45%로 유지하거나 40%까지 낮추되, 보험료율 11.0% 또는 13.5%로 인상해야 한다는 전문가 자문안이 언론에 먼저 공개되면서다. 국민 여론은 들끓었고 문 대통령은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보험료를 올린다’는 얘기만 확산된 것을 두고 복지부를 질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달 6일 보험료율 인상을 담은 정부안이 또다시 언론에 먼저 공개됐고, 박 장관이 다음날인 7일 문 대통령에게 같은 내용을 보고하자 다시 질책하며 ‘퇴짜’를 놨다는 게 복지부 내부 설명이다. 특히 청와대와 여당 내에선 박 장관에게 메시지 관리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번 개각 대상에 복지부 장관도 포함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해졌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7일 복지부의 연금담당 국·과장 휴대폰까지 가져갔다. 보험료율 인상안을 언론에 먼저 흘린 게 누군지 찾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청와대가) 보안 검사 차원에서 담당 국·과장의 동의서를 받고 휴대폰을 제출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거꾸로 개혁하나”

박 장관은 올 4월 한경 밀레니엄포럼 강연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처음 밝힌 뒤 종종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보험료율 인상 없이도 소득대체율 상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당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설계만 잘하면 국민연금 보험료 증가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소득대체율 인상) 방안이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2013년 ‘기초연금 파동’ 수순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복지부는 당시 청와대 지시에 따라 기초연금을 도입하면서 국민연금과 연계해 국민연금을 일정 수준 이상 받으면 기초연금을 일정 금액 깎도록 설계했다. 그러나 당시 진 장관은 국민연금-기초연금 연계가 자신의 소신과 다르다며 대통령 보고를 추진하다 무산되자 ‘항명 사퇴’했다. 사실상 대통령 뜻을 거스른 데 따른 경질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이번 일이 박 장관 교체로 이어지면 제대로 된 국민연금 개혁은 물 건너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대다수 전문가는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소득대체율을 더 낮추거나, 보험료율을 최소한 지금보다 올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연금개혁이 시도될 때마다 정부 초안은 보험료율 인상이었지만 매번 무산됐다”며 “이번에도 보험료율 인상이 담기지 못하면 ‘거꾸로 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일규/박재원/성수영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