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정상이 오는 13일부터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양자회담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소식이다. 다자간 정상회의가 열리면 한·일 정상이 별도 양자 회담을 해온 것이 관례였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두 정상이 각기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 정상들과는 잇달아 개별 회담을 하는 것과도 대비된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가 어렵게 된 것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두고 양국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어떤 나라도 한국과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본 지도자들의 발언은 타당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고 대응하면서 사태는 더 꼬이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상들이 만나봤자 의미 있는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게 양국 정부의 분위기다.

과거사 문제로 갈등이 장기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이 20년 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새로운 협력시대를 열기로 하고도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과거 문제도 중요하지만 외교관계에서 국익보다 우선할 가치는 없다. 북한 핵문제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두 나라가 공동대응해야 할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상이 나서 실타래를 푸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외교에선 어느 한쪽이 완승을 거두기는 어렵다. 양국은 과거의 아픈 역사를 뛰어넘어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냉철하게 숙고하며 문제를 풀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