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다단계 유사수신사범 전문수사관’인 서울 방배경찰서 지능팀장 김현수 경감(사진)의 책상엔 전문서적으로 가득했다. 《자본시장법 강의》 《금융범죄수사과정》 《핀테크와 법》 등이 책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올해 2월, 8년간의 노력 끝에 다단계 유사수신범죄를 주제로 취득한 석·박사 학위 논문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한번 터지면 수천명 피해…다단계 범죄 지능화에 대비해야"
김 경감은 “다단계 유사수신범죄는 일선서 경찰들이 수사하기 싫어하는 대표적인 분야”라며 “다단계 조직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나 범죄 수법 등을 배우고 1만 쪽이 넘는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해야 혐의를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단계 유사수신범죄를 다루려면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두루 갖추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론 없는 실무는 무모하거나 위험하고, 실무 없는 이론은 지루하거나 관념에 불과하다’는 게 평소 지론”이라고 강조했다.

김 경감은 국내 1호 다단계 유사수신사범 전문수사관이다. 전문수사관 제도는 경찰이 수사 전문성 향상을 위해 2005년 도입했다. 경찰청은 올해부터 기존 15개에서 88개 분야로 선정 대상을 늘려 지난달 26일 총 681명의 수사관을 선발했다. 지난 10년 동안 다단계 사건만 25건을 담당했던 김 경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다단계 유사수신사범 전문수사관으로 뽑혔다.

체육대학 유도선수 출신인 김 경감은 1997년 강력계 형사로 경찰에 입문했다. 그러나 2001년 서울 청계산에서 5인조 강도 차량에 매달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전치 10주의 큰 부상을 당했다. 강력팀에 미련이 남았지만 경제 범죄를 담당하는 지능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처음 담당한 사건이 3200억원대 다단계 유사수신범죄였다”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털어놨다. 이어 “첫 사건 이후 강력 사건뿐 아니라 다단계 유사수신범죄도 수천 명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중대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제 범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 지능수사반장, 경기남부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 등을 지낸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지난해 필리핀에서 검거한 1500억원대 가상화폐 투자 사기를 꼽았다. 그는 “피의자가 필리핀 현지에서 가상화폐 사기를 벌여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필리핀 경찰 50여 명과 열흘 동안 공조한 끝에 현지 호텔에서 피의자를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1호 다단계 유사수신범죄 전문수사관이 잘해야 2호, 3호 전문수사관이 탄생할 수 있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앞으로 경찰의 경제 범죄 분야 수사력을 높일 수 있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