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동춘 한국성장금융 사장, 대기업 구조조정 도맡던 '저승사자'…'죽음의 계곡' 넘는 벤처 구원투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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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춘들 '풍요 속 빈곤' 안타까워
기업가정신 지닌 모험가 많아져야"
35년간 공적자금 주무른 정책금융맨
1979년 당시 최고층이었던 삼일빌딩에 반해
대기업 합격 통지서 받고도 산업은행 입행
기업금융실서 굵직한 구조조정 수행
정책금융공사로 옮긴 뒤 '성장펀드' 조성
기업 '흥망성쇠' 지켜보며 역할 고민
佛 주재원 시절 외환위기 한파 몰아쳐
현지사업 철수로 경제적 압박에 설움도
기업 어려워지면 국민도 함께 불행해져
그들이 도전할 수 있게 판 만들어줘야
건강한 벤처 생태계 조성에 기여
모험자본 회수 방법이 IPO뿐인 건 문제
구글·카카오처럼 스타트업 제값에 인수해야
'성장-회수-재투자' 선순환 가능해질 것
기업가정신 지닌 모험가 많아져야"
35년간 공적자금 주무른 정책금융맨
1979년 당시 최고층이었던 삼일빌딩에 반해
대기업 합격 통지서 받고도 산업은행 입행
기업금융실서 굵직한 구조조정 수행
정책금융공사로 옮긴 뒤 '성장펀드' 조성
기업 '흥망성쇠' 지켜보며 역할 고민
佛 주재원 시절 외환위기 한파 몰아쳐
현지사업 철수로 경제적 압박에 설움도
기업 어려워지면 국민도 함께 불행해져
그들이 도전할 수 있게 판 만들어줘야
건강한 벤처 생태계 조성에 기여
모험자본 회수 방법이 IPO뿐인 건 문제
구글·카카오처럼 스타트업 제값에 인수해야
'성장-회수-재투자' 선순환 가능해질 것
1979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반이었던 대구 출신 청년은 서울 종로에 갔다가 당시 최고층 건물인 삼일빌딩에 내걸린 ‘산업은행’ 간판을 마주했다. 큰 빌딩에 있으니 좋은 회사일 거란 막연한 생각이 스쳤다. 이미 대기업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입행을 결심했다. 2016년부터 한국성장금융 사령탑을 맡고 있는 이동춘 한국성장금융 사장(62)이 뱅커의 길을 걷게 된 계기다.
그는 산업은행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대기업들에 메스를 들이대던 그가 지금은 자본시장에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서 뜨거운 국물 요리가 생각나는 이달 초 서울 공덕동 ‘안동국시’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20년 단골 가게라고 소개했다.
이 사장은 양지머리 삼겹수육과 녹두전 등 안주가 나오자 구수한 대구 사투리로 막걸리부터 권했다. 술잔이 서너 순배 돌자 웃으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을 들었다 놨다 하던 구조조정 전문가이니 스타트업 키우는 것쯤 쉽지 않겠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안주 대신 술 한 잔을 더 들이켠 뒤 말을 이었다. “쉬울 것 같으면 와서 한번 해보라고 그래. 작은 기업 하나 키우는 게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일인데.”
산은과 정책금융공사 ‘35년 뱅커’
이 사장은 경주에서 3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대구로 옮겨 경북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군미필 신분으로 산업은행에 입행했다. “안동국시는 산업은행 재직 시절부터 직원들과 자주 왔던 음식점”이라고 했다.
특유의 소탈함에 꼼꼼한 업무추진 능력까지 갖춘 그는 산업은행에서 요직을 거쳤다. 입행 초기엔 외환거래 업무를 했다. 조사부에선 국가 산업정책 리포트를 작성했다. 당시는 민간 연구기관이 자리를 잡기 전이어서 산업은행 조사부의 힘이 막강하던 시절이었다. 기업금융실에선 기업 구조조정을 맡았다. GM대우, 대한통운 등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던 기업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2007년부터 기업금융2실장을 지낸 뒤 2009년 정책금융공사가 산업은행에서 분리 독립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정책금융공사에서도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 굵직한 구조조정 거래를 다뤘다.
정책금융공사는 그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정책금융을 통해 신산업 성장동력에 씨를 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일했다. 그는 정책금융공사에서 98개 펀드를 만들어 11조7000억원의 정책자금을 조성, 7조원이 넘는 자금을 시장에 뿌렸다.
하지만 정책금융공사는 6년여의 독립 생활 끝에 산업은행에 다시 흡수됐다. 그는 정책금융공사를 끝으로 조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책금융공사가 당초 취지대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점은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이 사장은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지만 산업 성장기 덕분에 큰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며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풍요 속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들에게 창의적이고 기업가정신을 지닌 ‘모험가’가 되라고 조언했다. 젊은 인재들의 도전정신을 북돋워 창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라고도 했다. 그는 “적절한 자금 지원을 등에 업은 벤처기업들의 성공사례가 쏟아져야 아이디어가 있는 청년들이 더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에 뛰어들 것”이라며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벤처기업)의 탄생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금융공사에서 인연 맺은 성장사다리 펀드
정책금융공사를 나와 야인이 된 그는 바쁠 때 하지 못했던 여러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기업이 잘돼야 국민도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절감한 시기가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가 프랑스에 주재하던 시절 얘기다.
그는 산업은행에서 ‘현지사무소를 개설하라’는 임무를 받고 1996년 프랑스로 떠났다.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해외사무소를 열던 호황기였다. 그런데 이듬해 외환위기가 터졌다. 급여는 32% 삭감되고, 체류비도 대폭 줄었다. 사립학교에 다니던 이 사장의 자녀들은 모두 공립학교로 옮겨야 했다. 그는 “지난달 쓴 카드값이 결제가 안 될 만큼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았다”며 “마치 나라 잃은 서러움 같은 감정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삼성, SK 등 대기업들도 현지 사업장을 철수해야 했다. 산업은행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시 국내 금융회사가 프랑스 은행들로부터 만기연장을 해야 할 채권 규모가 38억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이 현지 은행들을 일일이 찾아가 사정해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그때의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친하게 지내던 현지 뱅커들이 갑자기 전화도 받지 않았다”며 “그들의 차가워진 태도에서 국가 위기를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어려워지면 결국엔 국민도 불행해진다”며 “기업들이 끊임없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모험자본을 키워나가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1년 넘게 재충전 시기를 보내던 그에게 다시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 모태펀드 운영기관인 한국벤처투자와 함께 초기기업 육성을 담당할 모험자본 공급기관인 한국성장금융 출범이 예고되면서다. 그는 대표직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한국성장금융이 운용할 모펀드인 성장사다리펀드는 실상 정책금융공사 때 태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정책금융공사와의 이별 때 남았던 아쉬움이 한국성장금융에서 다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고 말했다. 35년 금융인으로 쌓아온 노하우를 모두 쏟아내자는 마음으로 도전해 초대 대표로 선임됐다.
스타트업 육성 길, 현장에서 찾아라
한국성장금융의 모펀드인 성장사다리펀드는 성장 과도기에 있는 벤처기업이 ‘죽음의 계곡’(창업 3~5년 사이 신생 벤처기업의 폐업이 속출하는 시기)을 넘을 수 있도록 돕는 사다리가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투자자와 창업 기업의 가교 역할을 통해 ‘투자-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이 사장이 부임한 뒤 한국성장금융은 스케일업펀드, 세컨더리펀드, 그로스펀드 등을 통해 국내 모험자본 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외되기 쉬운 신생 투자회사만 선발해 출자하는 ‘루키리그’는 다른 여러 투자기관의 벤치마킹 사례가 됐다.
“항상 시장에 답이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장 이야기만 잘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답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벤처캐피털(VC)과 벤처기업인을 자주 만나서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보라”고 주문한다. 개선점을 찾는 일은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 사장은 때마침 나온 안동국시의 따뜻한 국물로 속을 덥힌 뒤 당부의 말을 전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구글처럼 스타트업을 많이 사줬으면 좋겠다”는 기대 섞인 당부였다. 구글 직원들이 회사의 개선점을 포착하면 회사를 나가 창업한 뒤 해결책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구글이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벤처생태계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창업을 해도 투자자금을 회수할 길이 기업공개(IPO) 등으로 한정돼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장하지 않더라도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있으면 투자와 창업이 모두 늘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카카오가 내비게이션 업체 김기사를 제값을 주고 산 것은 의미있는 사건”이라며 “한국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는 게 벤처 생태계 활성화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약력
△1956년 경북 경주 출생
△1975년 대구 경북고 졸업
△1979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산업은행 입행
△2007~2009년 산업은행 기업금융2실장
△2009~2010년 정책금융공사 기업금융부장
△2010~2013년 정책금융공사 금융사업본부장
△2013~2014년 정책금융공사 부사장, 성장사다리펀드 투자운영자문위원회 위원
△2016년~ 한국성장금융 사장
■한국성장금융은…
한국성장금융은 2013년 조성된 성장사다리펀드가 지속적인 모험자본 공급자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운용 전문기관이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성장 생태계 마련을 위한 모펀드의 운용과 관리를 맡는다. 우수한 운용사를 선정해 자펀드 운용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모험자본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2조8000억원 규모의 모펀드를 통해 91개 자펀드를 운용하면서 총 8조6623억원의 자금을 조성, 1337개 기업에 공급했다. ■이동춘 사장의 단골집 안동국시
양지머리 육수에 생콩가루로 만든 쫄깃한 면발 일품
서울 공덕동 서부지방검찰청 뒤편에 자리한 안동국시 전문점.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4번출구로 나와 에쓰오일 주유소가 있는 골목으로 5~10분 걸으면 30년 전통의 맛집을 만날 수 있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양지머리 육수에 국수를 삶아 내놓는 안동국시다. 볶은호박과 소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간다. 밀가루와 생콩가루를 섞어서 만드는 쫄깃한 면발로 정평이 나 있다. 가격은 1만원. 1등급 한우의 양지머리를 삶아 내놓는 삼겹수육과 담백한 맛이 일품인 녹두전도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가격은 각각 4만1000원, 1만5000원.
최고 품질의 대관령 황태를 사용하는 황태양념구이도 인기가 많다. 초벌구이를 한 뒤 마늘 생강 배 양파즙 등 10가지 이상 재료로 만든 양념을 발라 구워낸다. 가격은 2만8000원. 저녁에 오는 손님들은 10여 가지 음식이 차례로 나오는 한정식 코스를 주로 찾는다. 1인당 4만5000원을 내면 대표 메뉴에 더해 낙지볶음, 북어탕, 모둠전, 잡채, 홍어찜, 문어 등을 곁들인 푸짐한 한상이 차려진다.
경북 영양군에서 가져온 태양초로 담근 김치도 이 집의 자랑거리다. 콩나물은 직접 기르며 모든 음식은 육각수로 조리한다. 인공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그는 산업은행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대기업들에 메스를 들이대던 그가 지금은 자본시장에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서 뜨거운 국물 요리가 생각나는 이달 초 서울 공덕동 ‘안동국시’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20년 단골 가게라고 소개했다.
이 사장은 양지머리 삼겹수육과 녹두전 등 안주가 나오자 구수한 대구 사투리로 막걸리부터 권했다. 술잔이 서너 순배 돌자 웃으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을 들었다 놨다 하던 구조조정 전문가이니 스타트업 키우는 것쯤 쉽지 않겠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안주 대신 술 한 잔을 더 들이켠 뒤 말을 이었다. “쉬울 것 같으면 와서 한번 해보라고 그래. 작은 기업 하나 키우는 게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일인데.”
산은과 정책금융공사 ‘35년 뱅커’
이 사장은 경주에서 3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대구로 옮겨 경북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군미필 신분으로 산업은행에 입행했다. “안동국시는 산업은행 재직 시절부터 직원들과 자주 왔던 음식점”이라고 했다.
특유의 소탈함에 꼼꼼한 업무추진 능력까지 갖춘 그는 산업은행에서 요직을 거쳤다. 입행 초기엔 외환거래 업무를 했다. 조사부에선 국가 산업정책 리포트를 작성했다. 당시는 민간 연구기관이 자리를 잡기 전이어서 산업은행 조사부의 힘이 막강하던 시절이었다. 기업금융실에선 기업 구조조정을 맡았다. GM대우, 대한통운 등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던 기업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2007년부터 기업금융2실장을 지낸 뒤 2009년 정책금융공사가 산업은행에서 분리 독립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정책금융공사에서도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 굵직한 구조조정 거래를 다뤘다.
정책금융공사는 그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정책금융을 통해 신산업 성장동력에 씨를 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일했다. 그는 정책금융공사에서 98개 펀드를 만들어 11조7000억원의 정책자금을 조성, 7조원이 넘는 자금을 시장에 뿌렸다.
하지만 정책금융공사는 6년여의 독립 생활 끝에 산업은행에 다시 흡수됐다. 그는 정책금융공사를 끝으로 조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책금융공사가 당초 취지대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점은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이 사장은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지만 산업 성장기 덕분에 큰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며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풍요 속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들에게 창의적이고 기업가정신을 지닌 ‘모험가’가 되라고 조언했다. 젊은 인재들의 도전정신을 북돋워 창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라고도 했다. 그는 “적절한 자금 지원을 등에 업은 벤처기업들의 성공사례가 쏟아져야 아이디어가 있는 청년들이 더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에 뛰어들 것”이라며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벤처기업)의 탄생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금융공사에서 인연 맺은 성장사다리 펀드
정책금융공사를 나와 야인이 된 그는 바쁠 때 하지 못했던 여러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기업이 잘돼야 국민도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절감한 시기가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가 프랑스에 주재하던 시절 얘기다.
그는 산업은행에서 ‘현지사무소를 개설하라’는 임무를 받고 1996년 프랑스로 떠났다.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해외사무소를 열던 호황기였다. 그런데 이듬해 외환위기가 터졌다. 급여는 32% 삭감되고, 체류비도 대폭 줄었다. 사립학교에 다니던 이 사장의 자녀들은 모두 공립학교로 옮겨야 했다. 그는 “지난달 쓴 카드값이 결제가 안 될 만큼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았다”며 “마치 나라 잃은 서러움 같은 감정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삼성, SK 등 대기업들도 현지 사업장을 철수해야 했다. 산업은행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시 국내 금융회사가 프랑스 은행들로부터 만기연장을 해야 할 채권 규모가 38억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이 현지 은행들을 일일이 찾아가 사정해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그때의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친하게 지내던 현지 뱅커들이 갑자기 전화도 받지 않았다”며 “그들의 차가워진 태도에서 국가 위기를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어려워지면 결국엔 국민도 불행해진다”며 “기업들이 끊임없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모험자본을 키워나가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1년 넘게 재충전 시기를 보내던 그에게 다시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 모태펀드 운영기관인 한국벤처투자와 함께 초기기업 육성을 담당할 모험자본 공급기관인 한국성장금융 출범이 예고되면서다. 그는 대표직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한국성장금융이 운용할 모펀드인 성장사다리펀드는 실상 정책금융공사 때 태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정책금융공사와의 이별 때 남았던 아쉬움이 한국성장금융에서 다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고 말했다. 35년 금융인으로 쌓아온 노하우를 모두 쏟아내자는 마음으로 도전해 초대 대표로 선임됐다.
스타트업 육성 길, 현장에서 찾아라
한국성장금융의 모펀드인 성장사다리펀드는 성장 과도기에 있는 벤처기업이 ‘죽음의 계곡’(창업 3~5년 사이 신생 벤처기업의 폐업이 속출하는 시기)을 넘을 수 있도록 돕는 사다리가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투자자와 창업 기업의 가교 역할을 통해 ‘투자-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이 사장이 부임한 뒤 한국성장금융은 스케일업펀드, 세컨더리펀드, 그로스펀드 등을 통해 국내 모험자본 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외되기 쉬운 신생 투자회사만 선발해 출자하는 ‘루키리그’는 다른 여러 투자기관의 벤치마킹 사례가 됐다.
“항상 시장에 답이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장 이야기만 잘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답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벤처캐피털(VC)과 벤처기업인을 자주 만나서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보라”고 주문한다. 개선점을 찾는 일은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 사장은 때마침 나온 안동국시의 따뜻한 국물로 속을 덥힌 뒤 당부의 말을 전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구글처럼 스타트업을 많이 사줬으면 좋겠다”는 기대 섞인 당부였다. 구글 직원들이 회사의 개선점을 포착하면 회사를 나가 창업한 뒤 해결책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구글이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벤처생태계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창업을 해도 투자자금을 회수할 길이 기업공개(IPO) 등으로 한정돼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장하지 않더라도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있으면 투자와 창업이 모두 늘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카카오가 내비게이션 업체 김기사를 제값을 주고 산 것은 의미있는 사건”이라며 “한국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는 게 벤처 생태계 활성화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약력
△1956년 경북 경주 출생
△1975년 대구 경북고 졸업
△1979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산업은행 입행
△2007~2009년 산업은행 기업금융2실장
△2009~2010년 정책금융공사 기업금융부장
△2010~2013년 정책금융공사 금융사업본부장
△2013~2014년 정책금융공사 부사장, 성장사다리펀드 투자운영자문위원회 위원
△2016년~ 한국성장금융 사장
■한국성장금융은…
한국성장금융은 2013년 조성된 성장사다리펀드가 지속적인 모험자본 공급자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운용 전문기관이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성장 생태계 마련을 위한 모펀드의 운용과 관리를 맡는다. 우수한 운용사를 선정해 자펀드 운용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모험자본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2조8000억원 규모의 모펀드를 통해 91개 자펀드를 운용하면서 총 8조6623억원의 자금을 조성, 1337개 기업에 공급했다. ■이동춘 사장의 단골집 안동국시
양지머리 육수에 생콩가루로 만든 쫄깃한 면발 일품
서울 공덕동 서부지방검찰청 뒤편에 자리한 안동국시 전문점.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4번출구로 나와 에쓰오일 주유소가 있는 골목으로 5~10분 걸으면 30년 전통의 맛집을 만날 수 있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양지머리 육수에 국수를 삶아 내놓는 안동국시다. 볶은호박과 소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간다. 밀가루와 생콩가루를 섞어서 만드는 쫄깃한 면발로 정평이 나 있다. 가격은 1만원. 1등급 한우의 양지머리를 삶아 내놓는 삼겹수육과 담백한 맛이 일품인 녹두전도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가격은 각각 4만1000원, 1만5000원.
최고 품질의 대관령 황태를 사용하는 황태양념구이도 인기가 많다. 초벌구이를 한 뒤 마늘 생강 배 양파즙 등 10가지 이상 재료로 만든 양념을 발라 구워낸다. 가격은 2만8000원. 저녁에 오는 손님들은 10여 가지 음식이 차례로 나오는 한정식 코스를 주로 찾는다. 1인당 4만5000원을 내면 대표 메뉴에 더해 낙지볶음, 북어탕, 모둠전, 잡채, 홍어찜, 문어 등을 곁들인 푸짐한 한상이 차려진다.
경북 영양군에서 가져온 태양초로 담근 김치도 이 집의 자랑거리다. 콩나물은 직접 기르며 모든 음식은 육각수로 조리한다. 인공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