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그제 현대상선에 대해 “조직 내 모럴해저드가 만연해 있다”며 강력한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주 단위로 실적을 점검해 3개월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으면 (해당 임직원을) 퇴출시키겠다”는 경고가 뒤따랐다. 이 회장은 “혁신과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다”고 현대상선 임직원을 비판했다. 유일한 대형 선사 현대상선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정부는 2015년 말 해운산업 구조조정에 나서 업계 1위였던 한진해운을 2017년 2월 파산처분하고 2위였던 현대상선을 살리는 방법을 택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약 2조원을 집어넣었다. 산은은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지분 13.13%)가 됐고, 이후에도 고비 때마다 회생자금을 추가 지원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연명하는 사실상 공기업이 된 것이다. 산은은 이 회사에 2023년까지 5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13분기 연속 적자를 내는 등 경영난을 벗어나지 못해서다.

해운업 업황이 부진한 것이 주(主)원인이겠지만 정부 지원 부실기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기업 증후군’이 작용한 결과라는 게 업계 평가다. 이 회장이 대대적인 자금 추가 지원에 앞서 ‘구조조정 원칙’을 선언한 것은 그런 점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적지 않다. 산은이 현대상선 경영을 사실상 장악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뭘 했느냐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이 심각한 위기로 내몰리면서 부실기업 정리 등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부실기업 지원과 처리를 맡는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산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런 점에서 현대상선의 경영상태를 ‘주간 단위’로 점검해야 할 정도로 모럴해저드가 만연해 있음을 공개한 것은 충격적이다.

부실기업 회생에는 제대로 된 방법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신속하게 구조조정한 뒤 기업 가치를 높여 매각해야 부실을 줄이고 기업도 살릴 수 있다. 정부에 생존을 의존하는, 주인 없는 회사는 지금까지 봐 왔던 대로 부실만 늘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