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는 등 20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화재 발생 지점이 출입구 쪽으로 추정돼 거주자들이 대피에 어려움을 겪어 피해 규모가 컸을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9일 오전 5시께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에 있는 고시원 건물 3층에서 시작된 불은 소방관 100여명과 장비 30대가 투입된 끝에 발생 2시간 만인 오전 7시께 완전히 진압됐다.

1층 복요리집과 주점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지만 불이 시작된 3층은 시커멓게 그을린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3층 출입구 쪽에서 불이 났고 불길이 거셌기 때문에 제때 탈출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희생당했다. 오래된 건물이라 스프링쿨러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고시원 2층 거주자들은 맨몸에 외투만 걸치는 등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상태로 급히 대피했다. 2층 거주자인 50대 남성 김 모 씨는 "누군가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대피했다.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3층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바깥으로 대피한 한 중년 여성은 당시 상황을 묻는 취재진의 말에 "내가 반찬도 해주고 했는데 죽은 사람들 불쌍해서 어떡하느냐"고 울다가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고시원 거주자 가운데 대다수는 일용직 노동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주자들이 대피한 종로1·2·3·4가동 주민센터 3층 강당에는 한 남성이 속옷 차림으로 담요만 덮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2층 거주자인 한 남성은 강당 바닥에 엎드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회계사 시험 문제집을 풀기도 했다. 그는 빈손으로 대피하는 바람에 소방관에게 부탁해 어렵사리 문제집을 구했다고 했다.

당뇨를 앓고 있는 2층 거주자 이 모(64) 씨는 "아무것도 못 챙기고 속옷만 입고 나왔다"며 "약도 챙기지 못했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거주자 가운데는 베트남 국적 2명, 중국 국적 1명도 있었다. 2층에 거주하던 20대 베트남 남성은 "고시원에서 4개월 정도 살았다"며 "고시원장님이 소리를 질러서 듣고 뛰쳐나왔다"고 전했다.

고시원 인근의 상인들도 불이 난 고시원 주변을 서성이며 안타까워했다. 인근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이재호(61) 씨는 "오전 4시 58분께 누군가 '아악'하는 큰 비명을 질렀다. 나가 보니 건물 앞뒤로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연기가 정말 많이 났다"고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돌아봤다.

고시원 주변에서 30년간 조명기기, 소화 장비 등을 판매해온 상인 이 모(63) 씨는 "이 근방에 불이 자주 나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이 죽은 건 처음이다. 지나가며 눈인사하던 사람들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내부 수색 종료와 함께 감식반이 현장에 진입해 정밀감식 중이다. 폐쇄회로(CC)TV와 목격자를 확보해 범죄 혐의점이 있는지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소방대원들이 추가 인명 피해 여부를 확인한 뒤 고시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소방대원들이 추가 인명 피해 여부를 확인한 뒤 고시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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