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 자율주행 첨단제품 전시
글로벌 車업계서 4000여명 몰려
협업·투자관련 상담 잇따라
자율주행 스타트업 500여개
천문학적 돈 드는 플랫폼보다
카메라·레이더 등 틈새시장 공략
LG전자·현대차도 현지업체 투자
"규제보다 지원이 먼저다"
정부, 민간과 매칭펀드로 투자
'정부 돈=눈먼 돈' 인식 없애
실패 경험한 벤처 더 우대
이스라엘 정부가 지난달 29~30일 텔아비브 하비마국립극장에서 연 ‘2018 스마트모빌리티 서밋’에는 한국 독일 일본 등 세계 자동차업계 관계자와 연구원 등 4000여 명이 몰렸다. 이스라엘 중소·벤처기업이 자율주행 관련 기술과 제품을 선보였고 현장 곳곳에서 해외 기업과의 협업 및 투자 논의가 이뤄졌다.
이스라엘 대표 자율주행차 기업인 모빌아이는 임시 인허가를 받아 텔아비브에서 레벨3~4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시험하고 있다. 운전자가 차량에 탑승하지만 운전 개입은 최소화하는 수준이다. 모빌아이는 지난 3월 인텔에 153억달러(약 17조원)에 인수되면서 유명세를 탄 세계적인 자율주행차 기술 기업이다. 내년부터는 폭스바겐과 함께 자율주행택시 시범사업을 하기로 했다.
자율주행차 등을 포함한 보안기술에서도 이스라엘 기업들은 강점을 보이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이스라엘 군의 보안 기술이 민간 영역에 이전된 덕분이다. 삼성전자도 자회사 하만을 통해 이스라엘 자동차 보안업체 타워섹을 인수했고 추가 투자도 검토 중이다.
스마트모빌리티 서밋에 참가한 사이버 보안업체 아구스는 현장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해 원격으로 자동차 잠금장치를 풀고 와이퍼를 움직이는 기술을 선보였다. 자동차 전자제어장치(ECU) 보안전문업체 카람바의 데이비드 바질라이 공동창업자는 “보안이 허술한 차는 내비게이션·라디오 시스템과 연결된 인터넷을 통해 외부에서 침투해 자동차 엔진과 브레이크를 제어할 수 있다”며 “해킹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기술 혁신의 주인공은 스타트업
이스라엘은 1960~1970년대 이후 자동차 생산의 명맥이 끊겼다. 보쉬, 현대모비스와 같은 대형 자동차 부품업체도 없다. 그럼에도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는 것은 자율주행차 스타트업들의 혁신 생태계 덕분이다.
이스라엘에는 약 500개의 자율주행차 관련 스타트업이 있고 이 가운데 300여 개가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스타트업들은 대규모 자본력을 앞세워 완성차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테슬라, 구글 등과 직 접 경쟁하지 않고 틈새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기술 공급처로서 세계 자동차 메이커와 거래하는 방식이다.
LG전자가 미쓰비시 등과 함께 800만달러를 투자한 자율주행 솔루션 업체 바야비전이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카메라, 라이더(lider), 레이더(rader) 등의 신호를 융합하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고 있다. 한 가지 센서에 의존하면 장애물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프로그램 오류 발생 시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올해 초 테슬라와 우버의 자율주행차 사고도 이 같은 원인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로니 코헨 바야비전 최고경영자(CEO)는 “두 가지 이상의 신호를 상시 조합하면 안개가 끼거나 직사광선 및 전파 때문에 센서가 오작동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업체 포텔릭스는 자율주행차가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수십억 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소프트웨어에 주력하고 있다. 지브 비냐민 CEO는 “수백만㎞의 시험 운행 결과 자율주행 AI의 안전성이 인간을 넘어섰지만, 기계가 사람을 죽인다는 비난을 피하려면 사고율을 1000분의 1 정도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상품으로 주변 사물과 연결되는 커넥티드카 기능을 구현한 업체도 있다. 넥서는 소형 블랙박스 같은 전용기기를 차량에 설치하면 다른 사용자의 주행정보를 이용해 전방 급제동, 사고 경보를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도록 했다. 미국 뉴욕의 우버 운전자들에게 보급해 효과를 인정받았고 지금까지 45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눈먼 돈’ 없어야 진정한 벤처 천국
어떤 스타트업이든 가능성만 인정받으면 투자받을 수 있는 벤처 친화 환경이 조성된 데는 이스라엘 정부의 역할이 컸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부터 총리실 산하 수석과학관실을 중심으로 요즈마펀드 등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하고 신기술 산업화를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아미 아펠바움 경제산업부 수석과학관(장관)은 “천연자원이 없는 이스라엘로선 미래 기술의 흐름을 놓치면 생존이 쉽지 않다”며 “기업들이 마음껏 앞서가게 하고 정부 규제는 따라만 간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하면 산업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해에도 공공 재원으로 조성한 펀드로 5억달러를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아펠바움 장관은 “정부 돈은 눈먼 돈이란 인식을 없애기 위해 반드시 민간과 매칭펀드로 투자한다”며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기업이 외면하는 곳에만 정부가 직접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5년 전 민간이 외면했던 자율주행차 분야에 정부가 나선 덕에 오늘날 모빌아이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실패를 경험한 벤처기업을 오히려 우대한다. 그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텔아비브=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