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은 정보기술(IT)업계의 소송 과정이 당사자들의 에너지를 얼마나 소모시키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삼성과 애플은 디자인 특허 소송만 2011년부터 7년을 끌다가 지난 6월 조정으로 끝맺을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싸움을 하다보니 특허의 상업적 가치가 떨어져 소송의 실익도 사라졌다. 변호사들만 배불린 소송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소송'으로 7년 허비한 삼성-애플…"IT업계 분쟁 땐 '조정'으로 해결하라"
이 때문에 국제 조정·중재 전문가들은 IT 기업들의 분쟁 해결 절차로 조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강조한다. IT업계는 혁신 속도가 빨라 시간 절약이 그 어떤 사업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5일부터 닷새 동안 열린 ‘서울 국제중재 페스티벌’에서 IT업계의 지속 가능하고 신속한 분쟁 해결 방식으로 조정의 장점을 설명했다.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와 법무부,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국제상업회의소가 공동 개최한 이번 페스티벌은 서울 삼성동 소노펠리체 컨벤션 등에서 열렸다.

레스 쉬펠바인 전 록히드마틴 부사장은 록히드마틴 재직 당시 1건의 소송을 28년간 이끌었던 경험을 소개했다. 소송 절차가 길어질 때 기업이 얼마나 많은 진을 빼는지 보여준 사례였다. 그는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게 기업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걸 (오랜 소송을 통해) 알았다”며 “조정은 상대방과의 비즈니스 관계를 해치지 않고 비용과 시간 면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은 조정의 장점을 잘 알고 있으며 조정인 선정을 통한 분쟁 해결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게 쉬펠바인 전 부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술과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높은 조정인이 각광받는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 토론자들은 한국의 IT 기업들이 조정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건 한국 법원의 소송 절차가 미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속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에릭 윌버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국장은 “IT 기업들이 흔히 겪는 지식재산권 분쟁은 대부분 국제적 사건”이라며 “WIPO에서 다룬 지식재산권 분쟁 결과를 분석해보면 조정이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WIPO에서 다루는 분쟁 가운데 70%는 조정을 통해 해결됐다. 윌버스 국장은 “지식재산권 분쟁의 가장 큰 문제는 IT업계 간 분쟁이 외부로 알려지고 이 과정에서 업계의 협력 및 선순환 구조가 망가진다는 것”이라며 “조정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업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