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적극적 원유 증산 의지를 밝힌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돌연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말을 바꿨다.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 트럼프 행정부의 증산 압박이 줄어든 데다 세계 원유 수요 감소로 유가가 하락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산업에너지 광물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10개 비회원 주요 산유국의 장관급 공동점검위원회(JMMC)에서 다음 달부터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을 50만 배럴가량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알팔리 장관은 이번 감산 계획이 사우디의 독자적인 결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알팔리 장관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국제 유가가 너무 높다면서 11월부터 원유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말한 바 있다. 왕실 인사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에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수세에 몰린 사우디가 국제사회 비난을 피하기 위해 미국의 증산 요구에 응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이란을 제재함으로써 이란산 원유 유통을 금지시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제유가 상승이 중간 선거 득표율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OPEC의 유가 담합을 비난하면서 이란산 원유의 빈자리를 사우디의 증산량으로 채우기를 요구해왔다.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고 당초 예상과 달리 미국이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줄이는 계획을 발표하자 상황은 급변하게 됐다. 국제유가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관심이 줄어들고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도 느슨해졌다. 시장 수요가 줄면서 유가가 급락한 것이다. 국제 유가는 4년 만의 최고치인 배럴당 84달러(두바이유)를 기록한 지난달 초보다 약 20% 하락해 70달러 선이 붕괴했다.

알팔리 장관은 "최근의 유가 급락은 놀라운 수준"이라며 "시장의 심리는 공급 부족을 걱정하는 데서 과잉 공급을 우려하는 쪽으로 옮겨졌다"고 감산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무함마드 빈 하마드 알룸히 오만 석유장관은 기자들에게 "많은 산유국이 감산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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