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석유위기관리시스템을 정착시켜야
수년 동안 조용하던 석유시장이 최근 들어 다시 들썩이고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르자 국내 물가 상승을 우려한 정부가 지난 6일부터 한시적으로 유류세 인하를 단행했다. 인하 첫날 주유소 가격 검색 사이트인 석유공사 ‘오피넷’이 하루 종일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한 것만 봐도 이에 대한 국민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이란 제재를 복원한다고 발표하면서 석유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다행히 한국은 제재 예외국으로 인정되면서 이란산 원유 수입에는 차질이 없을 거라고 하니 한숨 놓을 일이다.

“한국은 석유시장에 대해 왜 이렇게 일희일비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그만큼 석유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석유가 수송용 연료일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제품을 만드는 석유화학 원료라는 사실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석유제품인 나프타를 이용한 석유화학산업 규모는 국내 제조업 중 4위이며,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 수출액은 반도체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석유가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중요한 자원인 셈이다.

석유가 한국 경제에서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국제 유가가 오를지 내릴지, 혹시나 원유 수입이 막히진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걱정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매번 국제 유가가 오르거나 원유 수입이 막힌다는 소식이 들려야만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가 중요함을 절실히 느낄까.

일반 기업들은 재난이나 테러가 발생하더라도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사업연속성계획(BCP·business continuity planning)을 수립해 추진한다. 한국에 석유 공급 불안은 곧 국가적 재난이다. 그러므로 국제 유가가 폭등하고 원유 수입에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국민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국가 차원의 BCP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자원 개발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석유 확보에 대한 방향을 잃은 모습이다. 그나마 정부에서 향후 10년에 대한 해외자원 개발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마저 든다.

석유위기관리는 크게 석유 비축과 석유 개발로 구분된다. 한국의 경우 석유 비축은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최고의 성과를 창출해 내 모범이 될 만한 운영방식(best practice)’으로 평가할 만큼 잘하고 있지만 석유 개발은 지난 정부로 인해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공기업인 석유공사의 신규 석유 개발 추진 소식도 전무한 상황이다. 석유 개발 사업은 성공 확률이 10%에 불과하지만 성공하면 실패한 90%를 만회할 수 있는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다. 게다가 탐사에서 생산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장기 사업이다 보니 이런 위험을 감내하면서 전략적 행동이 가능한 공기업이 먼저 나선 뒤에야 민간기업이 따라가는 구조다. 운영권을 갖게 될 경우 생산시설 건설에 우리나라 중공업 등 기간산업이 함께 진출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어 전후방 연관효과도 막대하다. 시작은 위험성이 있으나 성과는 소위 ‘대박’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기는 상존하는 것이다. 위기를 위험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기회로 여기고 극복해 나아갈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정권과 상관없이 정부가 석유위기를 대비해 경제와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장기적 안목의 BCP를 수립하고 추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