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내년부터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위반한 금융회사에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 제재수단을 도입할 방침이다. 전 세계 각국이 금융회사에 대한 자금세탁방지 의무 및 제재를 강화하는 추세에 발맞추기 위해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자금세탁방지제도 관련 금전적 제재 개선방안’, ‘법인·신탁 등의 자금세탁·테러자금조달 취약성과 악용 위험성 평가’ 연구용역을 잇따라 발주했다.

금융위는 우선 자금세탁방지의무 위반에 따른 제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거나 과태료를 대폭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위반한 금융회사에 대한 과태료는 최고가 1000만원에 불과하다. 과징금 등 다른 금전적 제재는 없다.

사후적 제재수단인 과태료와 달리 과징금은 기업이 불법으로 얻은 이익을 환수하는 금전적 징벌이다. 통상 과태료에 비해 많은 금액이 부과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자금세탁방지 의무에 대한 과징금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미 뉴욕 금융감독청(DFS)은 2016년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미비를 이유로 농협은행 뉴욕지점에 1100만달러(약 12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미 재무부가 국내 은행 7곳을 대상으로 직접 대북 금융제재 준수를 요구하는 등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금융당국이 서둘러 자금세탁방지 제재 강화에 나선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위는 내년 초까지 최종 용역 결과를 보고받은 뒤 법 개정 절차를 거쳐 내년 시행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이와 함께 국내 비상장법인 및 신탁의 자금세탁 악용 위험을 파악해 긴급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이 방안을 토대로 내년 1월부터 2020년 2월 시행될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상호평가 등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은 FATF 35개 회원국 중 하나로 2009년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금융위는 이번 용역을 통해 국내 법인과 신탁 대상으로 무기명주주 및 명목이사 등의 실태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서류상 소유주와 실소유자가 다른 법인이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조달 등의 통로로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것이 금융위의 설명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