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맨해튼’과 ‘판자촌’을 한 공간에 품고 있는 곳이다. 도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수디르만 거리 양옆엔 거대 마천루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자카르타는 분명 동남아시아 최고의 ‘메가 시티(거대 도시)’다.

하지만 도심에 가까이 다가서면 자카르타의 모습은 180도 바뀐다. 화려한 쇼핑몰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코스’로 불리는 쪽방촌 주민들의 거주촌이 보인다. 하루 1달러로 연명하는 그들의 ‘닭장집’은 우기 때면 상·하수가 뒤섞인 아수라장으로 변하기 일쑤다.

인도네시아는 ‘천(千)의 얼굴’을 가진 나라다. 인구 다수가 이슬람교를 믿지만 국교는 따로 지정하지 않았다. 인종적, 종교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한 몇 안되는 나라다.

현지 전문가들은 지금껏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도 인도네시아 진출과 관련해 뚜렷한 전략이 없었다고 진단했다. 인도네시아는 대국(大國) 의식이 강한 데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 미국과 중국에도 맞서는 나라다.

전문가들은 아세안 진출 전략이 각국 특성을 감안해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지 진출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은행들은 이렇게 말한다. “베트남에선 5년 내 승부를 보고, 인도네시아에선 5년 이상 버틸 계획을 짜라.” 베트남은 모방의 나라다. 한국이 일본과 미국을 따라했듯이, 중국이 한국을 ‘벤치마킹’했듯이 베트남인들은 뭐든 따라하고 ‘카피’ 제품을 쏟아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한국 기업인이 공장을 설립하면 한 달 뒤쯤 그 뒷골목에 종업원들이 똑같은 공장을 세운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인도네시아 등 대부분 아세안 국가는 베트남과 확연히 구분된다. 인도네시아만 해도 장기계획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다. 올해 인도네시아 진출 30주년을 맞은 CJ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동물사료 공장인 CJ라이신에서만 연매출 1조원 이상을 올렸지만 한때 대표적인 해외투자 실패 사례로 꼽혔다.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가 4.5마리에 불과해 CJ의 사료사업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더 크다.

자카르타=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