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日의 아성, 中의 공세를 넘어라
印尼 정부 '산업 4.0 로드맵' 발표…자동차·화학·섬유 등 중점 육성
기술이전 않는 日 대신 韓 선택…"압축성장 비결 전수해달라"
인도네시아는 '제2의 베트남'
문재인 정부 신남방정책 바람 타고 韓기업들 인도네시아 진출 타진
日의 텃세를 극복하라, 일본차 97% 점유…부품망도 장악
"현대차와 거래땐 끝" 은밀한 압박…현대車 상용차 진출 최대 '난관'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인도네시아에 최근 한국 기업의 진출이 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공장 준공을 위한 모든 허가 절차를 완료해 7년 숙원을 풀게 됐다. 현대자동차의 연산 20만 대 규모 상용차 공장 건설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자카르타 컨설팅업체들은 “광산 빼고 뭐든 소개해달라”는 한국 기업들의 주문에 골치를 앓을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신남방정책의 ‘바람’은 ‘제2의 베트남’을 찾으려는 기업들을 세계 인구 4위의 대국, 인도네시아로 불러들이고 있다. 한국의 압축성장 모델은 아세안의 ‘선망’
인도네시아 자동차시장은 일본의 텃밭이다. 도요타 등 일본 차의 시장 점유율이 97%에 달한다. 1970년대 초 현지 업체(아스트라)와 합작 진출해 약 50년의 세월에 걸쳐 이룬 결과다. 민간뿐만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산업부와 국제회의를 한 적이 있는데 장차관을 포함해 서열 상위 7명 중 4명이 일본 국비 유학생 출신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류가 바뀌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는 “인구 4위의 대국이지만 인구 절반은 여전히 농민”이라며 “제조업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데 일본은 물건만 팔 뿐 기술이전엔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어깨너머로 선진기술을 모방해 압축 성장을 달성한 한국의 성장모델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엔 선망의 대상이다. 인도네시아로 귀화한 한상(韓商)으로, 인도네시아 정부 자문관으로 일하는 한상재 회장은 “기술과 노하우를 이전하고 고용을 창출해달라는 게 인도네시아 정부의 한결같은 요구”라고 말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일본의 아성을 허물고 중국의 공세를 막아줄 ‘메기’ 역할을 한국에 주문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현대차가 인도네시아 토종차의 ‘어머니’가 되길 기대한다.
제조업 기반 구축 원하는 인도네시아
조선 등 해양산업도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국과의 협력을 원하는 분야다. 인도네시아는 해양국가를 꿈꾸지만 선박 건조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바다로 나갈 어선을 건조하지 못해 연근해 어업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원양어선 3000척 건조가 인도네시아 정부의 목표다.
이와 관련, 성동조선해양이 인도네시아에 수리조선소를 짓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황으로 일자리 위협을 받고 있는 한국의 조선·해양 분야 엔지니어를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에 파견하는 식으로 인재 양성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루피아화 폭락으로 외환보유액이 떨어지면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외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우리 기업엔 또 다른 기회다. 인도네시아는 올 2분기 80억2800만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전 분기보다 20억달러 늘었다. 인도네시아 화폐인 루피아 환율도 지난 9월4일 달러당 1만5029루피아까지 치솟으면서(통화가치 하락) 20년 만에 최저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호주 철강사 등 해외업체들은 이 틈을 타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를 요구하며 인도네시아 진출을 타진 중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시장은 만만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대차만 해도 도요타 등 일본 업체들의 노골적인 방해 작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부품 협력사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는 현대차 진출과 관련해 마지막 남은 숙제다. 자카르타에 있는 부품업체 대부분은 일본 완성차업체의 협력사다. 이들은 “현대차와 거래하면 일본과는 끝”이라는 반협박성 경고까지 듣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도요타 딜러 대부분이 정·재계 유력 인사와 연관돼 있다.
저임금 노동을 보고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1세대 기업인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상당수는 회사를 매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저임금을 찾아 계속 자카르타 외곽으로 나가다 보니 2세들이 가업승계를 꺼리는 탓이다. 대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SK그룹은 자원개발로 들어왔다가 큰 손실을 입었다. 신한카드는 진출한 그해에 카드 2개 이상 발급 제한이라는 정부 정책의 벽에 부딪혔다.
자카르타=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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