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속 동경의 비르투오소와 무대 오르다
“어린 시절부터 그린골츠의 음반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와 함께 서는 무대이기에 어느 공연보다 뜻깊어요.”

주목할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양인모(23)는 15일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의 ‘상주음악가 매치포인트’ 공연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이번 공연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콩쿠르로 평가받는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오른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펼치는 무대다. 17년 전인 1998년 우승한 일리야 그린골츠(37·스위스 바젤 국립음대 교수)와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양인모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돼 총 다섯 번의 상주음악가 시리즈 무대를 준비한 양인모는 마지막 무대의 파트너로 일리야 그린골츠를 택했다. 국내에서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 두 명이 함께하는 공연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에겐 묘한 공통점이 있다. 그린골츠는 파가니니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인 16세에 우승을 차지했다. 어린 나이에도 섬세한 해석과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했다. 그가 우승한 지 7년 뒤인 2005년부터 파가니니 콩쿠르는 1위 없는 2위만 배출할 뿐 우승자를 뽑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5년 약관(20세)의 나이에 한국인 최초로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쥐며 10년간의 콩쿠르 ‘1위 갈증’을 깬 사람이 바로 신예 양인모였다. 당시 미국 언론사인 보스턴글로브는 “흠잡을 데 없는 기교와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 내면의 진솔함을 연주로 표출해내는 능력이 있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또 있다. 그린골츠는 우승 이후인 1999년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을 통해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개 전곡 앨범을 내놨다. 양인모도 그와 마찬가지로 도이치 그라모폰과 손잡고 지난 5일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개 전곡 연주 실황을 데뷔 음반으로 담았다. 유럽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그린골츠는 미국 줄리아드음악원에서 공부했고, 양인모도 현재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공부하는 등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점 역시 비슷하다.

두 사람 모두 18세기에 제작된 바이올린을 주력 악기로 쓰고 있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양인모는 뉴잉글랜드음악원의 후원으로 요제프 요아힘이 브람스 협주곡을 초연할 때 사용한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요아힘-마’로 연주한다. 그린골츠 역시 1742~1743년께 제작된 주세페 과르네리 ‘델제수’ 바이올린을 빌려 쓰고 있다.

공통점만큼이나 두 사람의 인연도 깊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파가니니 카프리스 앨범을 듣고 자란 양인모는 2014년 예후디 메뉴힌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그린골츠를 만났다. 양인모는 “연주를 마친 뒤 그린골츠로부터 ‘파가니니 카프리스 1번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보기 드문 칭찬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때의 좋은 기억을 가슴에 담아뒀던 양인모는 상주음악가의 마지막 무대로 바이올린 듀오 연주를 떠올리면서 그린골츠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됐다.

이들은 뛰어난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힌다. 섬세한 해석으로 유명한 그린골츠와 거침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양인모가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비르투오소(예술의 기교가 뛰어난 연주자)적인 프로그램들로 바이올린의 팽팽한 긴장감을 선보일 예정이다. 1부에선 프로코피예프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버르토크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44개의 듀오’ 중 일부, 비에니아프스키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8개의 연습곡’ 중 일부를 차례대로 선보인다. 2부에선 기교와 정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 평가받는 이자이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를 들려준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