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도그룹은 아시아 한상(韓商)의 대표주자다. 1969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목재사업으로 성공신화를 일궜다. 연간 매출이 12억달러 규모인 코린도는 2~3년 전부터 성장률 정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엔 3개 합판사업부 중 한 곳에서 대규모 감산을 단행했다. 팜오일을 생산하는 농장은 매물로 내놨다.

‘라오스의 삼성’으로 불리는 코라오그룹도 고전하고 있다. 라오스가 중고차 수입을 중단시킨 데다 현대자동차로부터 반제품을 받아 조립 생산(CKD)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자체 상용차 브랜드인 대한(DAEHAN)을 출시했지만 판매가 저조하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한상들이 흔들리고 있다. 신발, 봉제 등 저임금에 기댄 임가공 중심의 시장 진출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신남방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아세안 각국과 고부가가치 산업에서의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무는 K·K 그룹 '韓商 성공신화'…저임금 좇는 진출 방정식으론 한계
기회는 오는데…‘선수’가 없다

인도네시아 인수합병(M&A) 시장엔 요즘 한상들이 내놓은 기업 매물이 쌓여 가고 있다. 대부분 섬유·봉제업 등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업체들이다. 1970~1980년대에 진출한 1세대 한상들이 70대 고령에 이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2세대들도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있다. 현지 사모펀드 관계자는 “평균 임금이 매년 오르다 보니 공장을 자카르타 외곽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며 “자카르타를 벗어나면 주거·교육 환경이 워낙 열악해 가족과 생이별하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계 기업은 대략 2000곳이다. 이 중 섬유·봉제업(23.5%)을 포함해 저임금에 기댄 제조업 비중이 59.8%에 달한다. 정보기술(IT)·통신과 같은 첨단 분야에 진출한 기업은 1.5%에 불과하다. 아시아 한상의 맏형격인 코린도그룹의 고전은 신남방을 개척할 ‘선수층’이 얼마나 엷은지 보여준다.

아세안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등 특정 국가로의 쏠림 현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아세안에 진출한 신규 법인은 총 1145개다. 이 중 709곳(61%)이 베트남에 둥지를 틀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맹주인 태국만 해도 이렇다 할 한국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태국은 삼성전자가 2003년 글로벌 전략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미·중·러·독·인도와 함께 6개국 명단에 오른 곳이다. 태국의 소비 문화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인근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태국에서 한국 기업들은 일본 업체와의 경쟁에 밀려 발도 못 붙인다. 은행은 단 한 곳도 없다. 글로벌 외환위기를 겪고 난 2000년대 초에 한국계 은행들이 자진해서 은행 면허를 반납하고 철수한 탓이다. 현재 산업은행이 인가를 받기 위해 사무소를 열긴 했지만 언제 허가가 나올지 모른다고 현지 관계자는 전했다.

일본은 이런 점에서 한국과 달랐다. 2011년 태국의 대홍수로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업계는 철수냐 잔존이냐를 결정해야 했는데 당시 그들은 인근 국가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아세안 경제공동체가 탄생해 역내 무관세 혜택이 주어지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곳은 일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획기적 정책 전환 필요

전문가들은 저임금 및 특정 국가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선 정부의 과감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금융만 해도 아세안개발은행과 같은 통합 기관을 설립하는 방안이 아이디어로 제시되고 있다. 각 은행이 각개약진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아시아개발은행(ADB)을 앞세워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세안 지역 인프라(사회간접자본) 개발에 1100억달러를 투입 중이다. 중국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동원해 인프라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분야와 모바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퍼붓고 있다.

하이테크 및 부품소재, 서비스산업 등으로 기업들의 진출 영역을 다양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전기차 제조업체인 에디슨모터스가 태국에 전기버스를 시범 공급하고 있는 것이 대표 사례다. 국내 대형 병원들은 인도네시아 의료 분야 진출을 추진 중이다. 아세안 국가 대부분이 하이테크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해선 외국인 소유 지분 한도를 없애는 등 규제를 풀고 있다. 한국의 대(對)아세안 수출 품목만 해도 지난해 처음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무선전화기 등 신산업이 철강, 조선 등 전통산업 품목을 추월했다. 2009년엔 전통산업 수출 비중이 66.7%였으나 작년엔 45.3%(신산업은 54.7%)로 감소했다.

자카르타·방콕=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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