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에서 배우겠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난 5월 취임 일성으로 한 말이다. 18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그는 ‘동방정책’을 밝히며 ‘탈(脫)중국’을 선언했다. 중국 기업이 추진하던 15조원 규모의 동부해안철도(ECRL) 사업도 중단시켰다. 대신 자국 제조업 육성을 위한 ‘인더스트리 4WRD’ 정책을 발표하고 일본과 한국을 ‘교과서’로 삼겠다고 했다.

1981년부터 22년간 집권한 뒤 이번에 다시 총리를 되찾은 ‘93세 노장’의 귀환에 일본 정부와 기업은 연일 들썩이고 있다. 마하티르 총리가 일본에 투자 ‘러브콜’을 지속적으로 보내면서 말레이시아 진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는 취임 후 일본을 세 차례나 방문해 “일본을 최고의 손님으로 대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양국간 ‘신(新)밀월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1980년대 이래 말레이시아 제조업 분야에 집중 투자해온 일본은 최근 몇 년간 중국의 ‘머니 폭탄’에 고전하던 터였다.

반면 말레이시아가 또 다른 핵심 파트너로 언급한 한국에선 마하티르 총리의 동방정책에 호응할 만한 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신남방정책을 추진 중인 정부 부처에서는 “말레이시아 보고서를 채울 만한 아이템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임금 중심의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진출이 낳은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말레이시아는 아세안 다른 국가에 비해 인구 수가 적고 인건비가 높아 노동집약적 산업 경쟁력은 다소 떨어진다. 자국인을 우선시하는 ‘부미부트라(땅의 아들)’ 정책도 외국인이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소다. 40년째 지속돼온 정책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선 반드시 현지 기업과 합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말레이시아는 놓쳐서는 안 될 지역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아세안 10개국의 경제 통합이 성사돼 역내 무역장벽이 완전히 사라지는 때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석유화학, 전자, 전기, 기계 등 기술집약적 산업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고 있어서다. 다른 아세안 국가들과 달리 법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믈라카 해협을 끼고 있어 최적의 물류 입지를 갖추고 있다. 세계은행이 올해 발표한 ‘기업환경평가’에서 전체 15위로, 아세안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말레이시아 총리의 한국 방문은 2011년이 마지막이다. 한국 대통령은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게 마지막이다.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싱가포르 아세안 정상회의 순방을 계기로 추진했던 양자 정상회담도 성사되지 못했다. 정부 당국자는 “내년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쿠알라룸푸르=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